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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저편에는....

슬픈 사슴눈을 가진 아이.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9.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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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슴 눈을 가진 아이 선규,

3년을 나와 함께 한 이 아이는 언제나 눈이 슬펐다.

선규의 형은 심한 자폐아 였고, 엄마는 아침일찍

선규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겨 놓고는 오후 5시까지

자폐아 형의 치료를 위해서 동분서주 했다.

처음 3살된 선규를 데리고 와서 상담을 할 때만 해도 밝고

웃음이 많았던 선규 엄마는 조금씩 지쳐가면서 웃음을 잃어 갔고

선규의 큰눈은 더 깊고 슬퍼졌다.

부천에서 단독주택을 팔고 화곡동으로 이사오면서 전세를 얻었다고 했다.

큰 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자 치료를 위해서 병원 가까이로 이사를 해야

했기에 화곡동으로 오게 되었다 했다.

그리고 2년이 되던 해에는 전세금을 뺐다. 그리고 작은 방을 얻어

월세로 옮겼다.

그렇게 큰아들 치료에 부부가 매달렸지만 3년이 지나도 좋아지지를 않았다.

그때만 해도 자폐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나이였다면 난 과감하게, 용감하게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돈들여가며 매달리지 말라고....

자폐는 긴시간이 필요한 마라톤이라고 ...... 단시간 승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때는 다들 자폐는 무슨 귀족병인 것처럼, 안은 천재인데

밖을 향한 문을 닫고 있을 뿐이니 스스로 그 문만 열게 해주면

바로 그 순간부터 괜찮아 질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영화의 영향도 컸다.

물론 한 부분이 천재적인 자폐아도 있다.

우리 어린이집에 그런 아이도 한명 있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자폐아는 지능이 낮고 중복장애를 가진 경우가 더 많다.

선규의 형이 그랬다.

지능이 낮았고 언어 장애도 함께 있어서 한시도 눈을 뗄수가 없었다.

딱 하루 엄마의 급한 사정으로 어린이집에 데리고 있었는데

선생님과 난 초죽음이었다.

그러니 매일 같이 다니는 엄마는 오죽하랴.....

어린 선규는 형에게 엄마를 양보하고 항상 시선이 엄마를 쫒았다.

교회 집사님들은 교회 청소나 꽃꽂이를 하러 오실 때면 항상 그러셨다.

"아니, 어린 아이 눈이 어째 저리 슬퍼요.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나까지 슬퍼지네"

선규의 큰 눈과 검은 눈동자는 그렇게 깊고 슬픔을 담고 있었다.

자상하고 착한 아빠도 지쳐갔고, 3년이 지나고 선규가 7살이던 어느날

부부가 찾아 왔다.

집을 팔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다고, 전세에서 월세로 나갈 때도

괜찮아 질것이라 스스로 위로를 했었다고....

이젠 너무 지치고 월급으로는 큰아이 치료비와 선규의 어린이집 종일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자폐 진단 받고 딱 3년만에 선규부모님은 지쳤다.

사실 어린이집 종일반 등록금이 법으로는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35만원에서 18만원까지였다.

그런데 화곡동이 어려운 동네인지라 보통 10만원에서 15만원을 받았었다.

엄마들이 버는 월급이 뻔한데(그때 유치원 교사들 월급이 35만원에서

40만원 일때였고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엄마가 받는 월급이

70만원이었을 때였다.) 그 월급에서 아이들 종일반 등록금을 내면

반이나 남을까..... 그러니 아이들 상황에 따라서 등록금을 받았었다.

선규는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등록금을 내렸었는데

그것도 미안했었나 보다.

엄마는 일을 할 수가 없고 큰 아들과 붙어 있어야 하니 아빠 혼자 버는

돈으로는 내 계산으로도 벅찼다.

그래서 집도 팔고 전세금도 뺏겠지만.....

선규네는 그렇게 또 어딘가로 이사를 갔다.

자폐아의 놀이 치료, 언어 치료, 그리고 특수아동의 유치원교육은

정말 비쌌다. 정기적인 검사도 계속해야 했고.

 

선규는 항상 자신감이 없었다. 똑똑하고 잘하는데도 자신감이 없었다.

큰소리로 울지도 않았고, 큰소리로 환하게 웃지도 않았다.

 

언제나 조용한 아이, 그 큰 눈망울이 항상 촉촉히 젖어 있던 아이,

3살이 많은 형이 형답지 않아 엄마를 형에게 양보하고

언제나 엄마 품이 그리운 아이.

매일 지쳐있는 엄마에게 떼도 못쓰고 주변만 맴도는 어린 왕자님이었다.

요즘도 발달장애나 정신지체 아이들을 보면 선규가 떠오른다.

가족이기에, 형제이기에 함께 가야하는 길인것은 분명한데

선규는 너무 어렸었다. 이해하기에는.

 

청년이 되었을 텐데 지금은 이해하겠지?

아직도 슬픈 눈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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