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라... 눈물날 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 중에 아직도 생생하게 그 느낌이
살아 있는 소설 몇 권이 있다.
"뿔 없는 사슴"을 읽으면서 처음 문둥병(한센병)에 대해 알았고
혹시나 나도 걸리면 어쩌나 한 동안 불안함을 느꼈었다.
또 하나는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고등학생 때 서점에서
우연히 사가지고 와서 읽고 있는데 저녁에 심방 다녀오신 엄마가
그 책을 보더니 반가워 하면서 엄마도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이라며
나중에 딸들에게 읽어보라 해야지 했었다고 하셨던 책이다.
그런데 같은 나이에 딸이 읽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하셔서 더 가슴에
남은 책이었다. 엄마도 내 나이에 이 책을 읽었었다고... 하면서.
잔잔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표현되기 쉽지 않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키 작은 코스모스... 작가는 잊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한 것이 이런 거구나... 했었다.
그리고 미혼모로 딸 하나 키우며 교수로 사는 주인공을 보면서
교수로 살고 있기에 그 시대에 미혼모로 살 수 있는 거겠지 했었다.
처음 미혼모라는 존재도 알았던 소설이었다.
그때부터 였나 보다.
공부가 좋고, 공부를 계속하고 싶고,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그러다 전 혜린씨의 책을 읽고는 독일로 유학 가고 싶고 교수가
정말 되고 싶다.... 는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
경제적인 도움 없이 어떻게 어떻게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과정은 1년 쉬고 다시 돈 모아 준비해야지...
유학은 나에게는 정말 꿈같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실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고...
한글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국제학교 유치원에서 헬퍼로 일하면서
배운 심리학으로 몇 몇 학생들 검사하는 시간으로 살다가...
엘떼 한국어과에서 시간강사를 하게 되어 출근하던 날.
교수도 아닌데.. 그냥 시간 강사인데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설렘으로
긴장했었다.
3년이 지나고 이제는 좀 익숙해지고, 학생들을 대하는 게 편해졌는데
이제 그만둔다.
내 나이 더 들기 전에 우리 아들하고 더 많이 여행을 하고 ,
설립한 비영리단체 Remény Darabjai Alapitvány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
수요일 기말시험을 보고,
금요일 오늘은 학생들이 자기가 본 시험과 성적을 확인하는 날이다.
무엇을 틀렸고, 잘 못 알고 있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
꼭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었다.
시험 보고 성적이 나오면 자신이 틀리거나 잘 못 알고 있었던 부분을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에.
페트라가 10시 20분 기차를 타야 한다고 어젯밤에 연락이 와서
10시 수업이지만 9시 20분에 왔다.
제일 먼저 자기 시험지 확인한 뒤에 기차 타고 가야 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자기 시험지 확인하고 궁금한 것 물어보고,
사실 그 전에는 그냥 내가 집에서 채점하고 올렸었다.
그런데 많이 아쉽고... 이 부분을 설명해 주면 다음에는 안 틀린 텐데...
시험 본 뒤에 확인하면 절대 똑같은 부분에서 실수하지 않을 텐데...
해서 이번 학기는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학생들이 정말 좋아했다.
본인들도 궁금했었기에.
틀린 것은 왜 틀렸는지 다 확인하면 성적을 올리면 끝~~~
그렇게 3년의 시간이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수업이 아니라 확인하러 오는 날이라서 그런지
학생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편하게 서로 이야기하고,
웃고..,
그런데 초콜릿을 준비해서 온 비비,
고맙다며 노란 튤립을 사 온 비키,
-선생님, 어제 스승의 날이었어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꽃 화분을 준비해서 온 조이.
울컥 눈물 날 뻔 했다.
마지막 9과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현충일..... 이 있었는데
스승의 날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조이는 학습에 약간 장애가 있어서 다른 학생들보다 시험 볼 때 10~15분의
시간을 더 주어야 하는데,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성적이 좋다.
시험지 확인하고 가는 도리랑 한나는
-선생님, 정말 재밌었어요. 선생님 수업시간 정말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고개숙여 인사를 하는데 뭉클.
-고마워요. 다음 학기부터는 엘떼 수업은 안 하지만 궁금하거나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해요. 내 사무실 가까우니까 언제든지 전화하고 오고.
사무실에 오면 언제든지 라면 끓여 줄게요.
했더니 다들 네~~~ 한다.
그러고 보니 그전에는 시험 끝나고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이렇게 편하게 다시 만나서 뭘 몰랐었는지 다시 이야기하고 웃고, 알았는데 헷갈렸어요,
답을 고쳤는데.. 고치지 말 것을... 하며 웃고.
참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계속 고등학교 때 읽었던 "키 작은 코스모스"소설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그때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생각을 했었고...
계속 가슴에 담겨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3년의 시간은 참 행복했다.
시간 강사라서 일주일에 몇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서 행복했고,
항상 어린아이들만 가르치다가 대학생을 가르치니 또 다른 경험이어서
감사했다.
이제 안녕~~~ 한다.
고마웠어.
우리 아들, 엄마랑 가을에는 한국에 갈 수 있다며 벌써 기대하고 있다.
아들, 엄마랑 정말 많이 여행하고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