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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나도 위로가 되는 그런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3. 6. 25.

어제 주일 예배후 빵 나누는 시간.

남편이 묻는다.

오늘 오후 이 목사님 내외 식사 초대할까?

오늘 오후?

응. 여쭤보고
한국에서 교수로 은퇴하시고 신학공부 후 선교사로 헝가리에 오셔서

우리 교회 협력 목사님으로 섬기셨는데 열흘 뒤면 한국으로

귀국을 하시기에.
그렇게 갑자기 식사 약속이 잡혔다.

다행히 전날 고기가 좋아 사다가 양념에 재워둔 것이 있었고,

마침 상추를 주신다며 예배 끝나고 다녀가라는 고마운 전화.

정말.... 일 년 만인가? 

바로 옆에 살면서도 이렇게 일 년여 만에 오니....

올 때마다 어쩜 저리 잘 가꾸시는지....

말 그대로 무공해 바이오다.

이 귀한 상추를 주셔서 오늘 저녁에 겉절이로.

그래서 우리 식구 포한 7명의 식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남편이 담임목사님께 전화를 드리고,

오늘 오시는 손님까지 모두 6 분을 더 초대를....

그래서 7 명이 아닌 13 명이 되었다.

바로 20분 남겨놓고.....

우짜노~~~미역을 이제사 더 불릴 수도 없고

(언니가 알려준 대로 미역을 불려 레몬을 짜서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했다.),

밥은 고기를 먹으니 어쩌면 괜찮을 텐데.....

아니면 냉동밥을 녹일 수밖에.

그래서 감자를 얇게 채쳤다. 찹쌀가루를 넣고 부치기 위해.
그 와중에 엄마 도와주던 하은이가 김치 그릇을 나르다 깨트려.....

에고~~~~ 김치가 별로 없는데.... 혼잣말을 하는데

하은이 너무 미안해서 엄마 미안해요..... 앗차... 싶어. 

괜찮아. 조심해야지. 

옆에서 보던 하빈이.

엄마 김치 모자라는데 다 버려요? 그럼 버려야지.

혹시나 깨진 조각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그러다 내가 당황하고 짜증을 내고 있구나.... 알았다.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인데....

남편이 전화를 드리고 흔쾌히 방향을 바꾸어 와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인데..... 반성을 하고.
서둘러 딸들의 도움을 받아 상을 차리고....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셔도 한 번도 사진 찍어요 하지 않았었는데 

사모님께서 사진을 찍고 싶다 하셔서 나도 한 장 함께.

우리 집 체리로 후식을 대신하고.

이렇게 스쳐간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인생이 나그네 길이라 하지만 정말 헝가리 이곳 생활 자체가

나그네라 매일 이렇게 말해준다.
월요일,

아침부터 4곳을 둘러둘러 있는 배추 모두 쓸어 모아

김치 달랑 두통을 담았다.

우리 집 것과 교회 청년 들것.

혼자 배추를 열심히 썰다가.... 혼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언제부터 김치를 담으며 이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손만 움직여 배추를 썰었나....

갑자기 내가 낯설어지고. 가만 생각해 보니 김치를 담글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기계처럼 칼질을 하지는 않았었다.

흥얼흥얼 찬양을 하고, 소리치며 딸들과 대화를 하고, 그것도 아닐 때면

배추랑 파랑... 얘기를 하며 그리 담았었는데....

정말 진공상태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칼질만 하는 내가.... 어이없음.

그러다... 생각했다.

얼마 전 참으로 위로가 되는 식사초대를 받았었는데

김치를 담아도 이렇게 담지 말아야지.

앞으로 우리 집에 식사를 초대할 때면

누가 되었든 내가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그렇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하던 동네에 있는 이태리 식당이라

해서 익숙하게 갔는데....

신랑도 나도 깜짝 놀랐었다.

어쩜 저리 변했는지.....

우리가 너무 회사, 집, 학교만 오가는구나.... 이렇게 변했는데....

 

그리고 초대해 주신 이태리 고급식당.

참으로 긴 시간을 부다페스트에서 함께 한 가족.

이젠 한국에 가면 만나겠지.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말했었다.

여보, 난 참 좋다. 오늘 저녁식사가.

그리고, 생각했다.

이 저녁 식사가 날 위로해주는구나.

감사합니다.

저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위로가 되는 기쁜 식사였습니다.

 

어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손님을 대접하면서 맘이 편치가 않았었다.

너무 소홀해서, 갑작스럽다는 변명을 하면서.

그리고

오늘 청년들 김치를 담그면서 정성 들여 맛있어야 해.

청년들이 먹을 거니까.

 

이 음식이 청년들을 위로해주고 힘을 줄 수 있다면.

앞으로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밥이 될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그리 소망해 봤다.

 

엄마가 비행기 안에서 읽다가 가실 때 두고 가신 책을 읽고 있다.

오늘 아침,

이 말씀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이라고....

영글어 가는 호두가 신기했던 엄마.

저 초록이 갈색이 되냐..?

아냐, 엄마. 저 초록 안에서 갈색 호두가 나오는 거야. 초록 껍질은 벗겨지고.

 

부드러워 보이는 저 안에서 아주 단단한 호두가 나오기까지 한여름을 지낸다.

지금 나와 남편도 그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초록 껍질이 말라서 벌어질 때 우리의 믿음도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엄마가 계시던 지난주는 연일 40도가 넘더니 오늘은 20도 아래도 떨어져 춥다.

모든 창문과 문을 다 열었었는데 오늘은 문을 닫는다.

우리의 삶도 이렇겠지.

더웠다가 추웠다가....

6월 마지막 주인 오늘 20도로 뚝! 떨어진 날씨에 바람이 심하게 불지만

며칠 뒤면 다시 뜨거운 여름날이 될 것이고,

더워 힘들다 힘들다 몇 번 하면 다시 찬바람이 불어오며 겨울을 준비시키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과실수가 그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매를 준다는 것이다.

나와 남편의 삶에서도 우리가 떠난 자리에 열매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기도하며 그리 살고 싶다.

정말 간절히 그리 바라고 또 바란다.

그리 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