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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세상을 알아가는 내 새끼.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8. 5. 12.

덥다.

오늘도 차 안 온도계가 29도란다.

벼룩시장에 잠시 다녀오는데 사진이 카톡으로...

울 작은 녀석 생일을 이모랑 외할머니가 미리 해주셨다는 사진.

 

 

 

작은 녀석 생일 때 학교 기숙사에 있기에

이모랑 외할머니가 주말에 미리 생일은 해줬단다.

엄마가 차린 생일 상보다 더 맛있는 것이 많네. 

외할머니가 생일이라고 용돈도 주고.

그러면서

저녁 먹으며 하빈이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중간시험을 보고 나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울 딸.

그런데....

모든 과목이 다 힘들지만 유난히 쉽지 않은 과목이 있다며 나보고 영화를 좀 보란다.

울 딸 12년 학교 성적이 올 A 였는데, 처음으로 B도 있고,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이 과목은 C+ 가 나왔단다.

괜찮아, 하빈아. 잘 했네. 스트레스받지 마.

그랬더니 자기도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이 과목 성적은 이제 회복 불가능이라 포기했단다.

궁금해서 물었다.

과목 이름이 뭐야?

동아시아 젠더...뭐 그런 거야.

그래? 근데 왜 영화를 이렇게 많이 봐?

영화를 보고 서로 분석하고 레포트를 써야 해. 그걸로 평가하는 거야.

그럼 동아시아니 성에 관한 거니까 영화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성역활, 성 정체성, 성 개념의 변화 등을  쓰면 되겠네.

근데 그렇지가 않아. 배경음악, 영화의 전반적인 색. 몰라.....

그냥 영화를 보고 내가 주제를 정해서 써야 하는 거야.

응..... 한국 대학의 리포트 쓰는 방식이 있으니까 울 딸이 힘들구나.

그냥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거야. 교수가 원하는 것을 내가 파악을 못하니까.

 

그런데 교수가 불렀단다. 작은 녀석을.

그래서 교수한테 갔더니

" 넌 내 수업에서 너무 소극적이다.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고 했단다.

왜 말을 안하느냐고.

작은 녀석은 듣는 편이지 나서서 말을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교수 눈에 수업에 무관심한 학생으로 보였나 보다.

작은 녀석이 머릿속으로 할 말을 생각하다 보면 토픽이 바뀌고,

중간에 치고 들어 갈 수 없다 보니 자꾸 놓친다고 말을 했단다.

그리고

봐야 하는 영화들이 많이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단다.

그랬더니 왜 불편하냐고,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그런 것을 말하라고 했다는데....

어쨌든 최저점을 받았단다.

엄마, 상관없어. 어쩌겠어. 내가 못한 것을.

리포트에 크리스천 적인 것을 원하는 거니?

아냐.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영화 보고 내가 토픽을 정해서 분석해서 쓰는 거야.

미디어 영상학과도 아니고 동아시아 젠더인데

그런 것에 대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참 어렵다.

그렇게 말하고 어떤 영화인지 나도 다운로드하여 보기 시작했다.

신세계, 해피 엔드, 번지 점프, 마더, 불한당, 비밀은 없다, 한 공주....

다 하빈이는 본 적이 없는 영화들이다.

크리스천 학교를 다녔기도 했지만 헝가리에서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영화 위주로 봤고, 가족 영화 위주로 봤기 때문에

이 영화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특히 해피 엔드( 시작부터 엄청 야한 정사 장면이 꽤 오래 나온다.)는 너무 불편했단다.

그리고 한공주 또한 집단 성폭행 이야기인데 현실처럼 

자살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상황.

이런 것은 동아시아 성에 관한 관점으로 쓰면 될 텐데 그것도 아니란다.

어쨌든 작은 녀석은 이런 영화가 너무 불편하고 리포트를 쓰려면

여러 번 보면서 생각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이슈를 주고 쓰는 것이면 쓸 텐데 그것이 아니고

자기가 영화를 보고  알아서 정해서 써야 하는데

어떤 친구는 번지 점프에서 이병헌의 성격이 변하는 것에 대해서 쓰고,

어떤 친구는 진지한 영화 안에서 코믹한 장면들을 뽑아서 썼단다.

그래서 작은 녀석은 더 헷갈린다.

도대체 동아시아 젠더 과목에서 이 영화들을 보고 무엇을 쓰라는 것인지.

그래서 주관을 가지고 썼는데

교수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2학기도 자기는 교수가 원하는 것을 모를 것 같단다.

미디어 영상학과라면 당연히 영화를 분석하고

배경음악, 색, 소품, 대사 등 모든 것을 다 봐야 하겠지만

도대체 뭘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는지 그래서 포기했다고. 

그래 스트레스받지 마. 괜찮아 딸~~~

그렇게 말해 주었다.

 

난 딸들을 너무 가둬서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크리스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어느 가수 음악은 듣지 말라고 하고,

이런 영화는 절대로 봐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해도

난 아이들이 보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왜 봐서는 안 되는지, 왜 나쁜지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심한 사람은 슬립오버에서 자기 딸이 봐서는 안되는 영화를 봤다면서

슬립 오버한 집 부모에게 항의하고 화를 냈다는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다.

내가 알기로 그 집 딸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부모만 모르게

모든 음악, 영화 다 보고 듣고 하는데

부모만 유별나게 경건한 크리스천으로 키운다며 유난이었었다.

두 딸들 모주 12학년 때 내가 믿을만한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클럽도 갔었다.

가서 보고 느끼고 그리고 스스로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무조건 못하게 한다고 해서 경건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부모가 엄청 크리스천 인 것 처럼 유난 떨고 자기 아이들은

절대로 클럽 같은 데 안 보낼 것이라며

순결하고 경건한 아이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뒤에서는

부모 몰래 거짓말 엄청 하고 다닌다.

어쨌든,

기독교 수업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시험지에 교수가

너무 크리스찬 적인 답이었다고 적었단다.

뭐가 너무 크리스찬 적인 것일까?

나 혼자 생각을 해봤다.

작은 녀석 답안지를 본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교수가 보라는 영화들이 청소년 관람불가도 있기에 하빈이는 본 적이 없는 영화들을 대학 들어가자마자

과제를 하기 위해 열심히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폭력적이고, 성적이고, 불륜이며 불의한 영화들이 하빈이를 많이 불편하게 하고 있다.

불편하다는 그 표현이 너무 적절해서 웃었다.

이 세상이 그런 거야.

이제 세상을 알아가는 우리 딸.

이 불편하고 불의한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런 면에서 이 수업이 우리 딸을 키우고 있네.

진짜 성인이 된 우리 딸.

불의하고 불편하고 답답함이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 딸 하나님의 빛의 딸로 살려면

더 용기 있고 지혜로워야 겠지.

생일 축하해 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