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학교에서 광고하고, 메일로 학부모들에게 알리고ㅡ
하은이의 성화에 표를 사고 비가 오는 날,
전기장판에 허리 지지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작은 꽃다발하나 들고
학교 강당으로 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그런데 여기저기 꼬마 해적들이 쥐방울 굴러다니듯 돌아다닌다.
그러고 보니 오늘 뮤지컬이 해적이야기란다.
"The Pirates of Penzance"A Gilbert and Sullivan Operetta
작년에는 신데렐라였는데 관람온 꼬마들이 왕자님, 공주님이더니
오늘은 출연진의 가족 중 해적복장이 많다.
개구쟁이 꼬마들은 거의 다......
교장부인도 아이들 함께 완벽한 해적복장으로 연극을 관람하고
사진을 찍고 무대는 안 올라가고....
그래서 중학교 뮤지컬이 더 신난다.
미리 유리가 제일 앞자리를 맡아 놓고는 동생 보고 지키라는
엄명을 내렸나 보다.
10분 전에 강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혜린이가 와서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따라오세요.' 하더니 맡아 놓은
좋은 자리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잽싸게 놀러 간다.
언니의 엄명에 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기다렸나 보다.
카메라 고장 난 것이 오늘은 쪼끔 속상하다.
쥐방울만 한 해적들이 여기저기 출몰하여 칼싸움하는
광경이 너무나 재미있다.
위도 무대이고 아래도 무대이고.....
오늘은 살아 있는 생생한 연극 무대 한가운데에 내가 놓여 있다.
중학교 뮤지컬이 지만 당당히 자신이 원하는 배역에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것이란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인공에
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에도 제일 인기 없는 배역이 왕자님이고 제일 많이
몰린 배역이 계모와 신데렐라의 언니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왕자님의 아버지. 임금님의 인기가 높았었다.
오늘은 해적두목과 그 일당들의 배역이 인기가 높았었다고 한다.
음향을 담당한 선생님과 중학생들.
교장선생님의 기도로 드디어 뮤지컬이 시작되었다.
배우들이 등장하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고 대사를 하는데
옆에서 작은 딸이 옆구리를 찌른다.
"엄마, 엄마는 알아들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직 헝가리 학교를 다니는 작은 아이는
영어로 하는 대사를 못 알아듣고는 심술이 났다.
계속 옆구리 찌르면서 알아들으면 이야기 좀 해달란다.
에미도 못 알아듣는 것을 어찌 말해주나......
2-3 세 살 어린 꼬마들도 꽤 많은데 어찌나 조용한지....
쥐 죽은 듯 조용하다가 함께들 웃고 다 같이 큰 소리로 손뼉 치고.
비싼 표 사서 가는 연극도 이런 수준 높은 손님 모시기 힘들지 싶다.
40분 공연이 끝나고 15분간 휴식을 한단다.
작은 아이가 목이 마르다 하여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니
엄마들이 직접 만든 쿠키와 케이크, 김밥을 놓고 고등학생들이 팔고 있다.
김밥은 고등학교 한국엄마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김밥 한 줄도 아니고 반쪽에 1500원을 받는다.
그래도 다들 김밥을 많이 사가지고 가는 것을 보더니
작은 아이 "엄마, 진짜로 김밥을 많이들 좋아하나 봐요.
다들 김밥만 사잖아요." 한다.
음료수 한 병과 쵸코케이크 한쪽을 샀다.
연극이 끝나고 유리랑 사진 한 장 핸드폰으로 찍고 집에집에
데려다주는데 아이들이 목소리가 높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연극이나 음악회에서 아이들이 긴장을 하지 않고
너무나 당당히 '엄마, 나 좀 봐 주세요.
'여러분들, 나좀 봐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어찌나 밝게 예쁘게 하는지.
오늘 연극도 혹시나 실수하면 어쩌나, 혼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표정이 하나도 없다.
다들 이 상황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부모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분위기를 더 고조시키기 위해 함께
분장을 하고 와서 연극을 관람한다.
하은이는 내년에 자기도 중학교에 올라가면 연극을 꼭 하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하빈이는 아마도 내년에는 피터팬을 하지 않을까 의견도 말하고,
난 내년에 우리 딸이 연극을 하면 오늘 교장 부인처럼
함께 의상도 갖추고 얼굴도 분장하고 액세서리도 걸치고
적극적으로 함께 해줘야지 생각도 해본다.
그나저나 내년에는 뭘 하려나....
백설공주 뭐 그런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럼 난 난쟁이를 하나 아니면 마귀할멈을 하나.....
난쟁이보다야 마귀할멈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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