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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눈 썰매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8. 1. 9.

베란다에, 처마 끝에,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들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얼음에 쌓여 있던 세상의 사물들이 허물을 벗는다.

그런데 얼음옷을 벗는데 더 추워 보인다.

얼음옷도 옷인가 보다.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서는데 작은 아이를 눈썰매에

태우고 큰 아이 손을 잡고 나서는 엄마를 보았다.

눈이 오면 아이를 유모차가 아닌 썰매에 태우고 유치원에도 가고,

시장에도 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8년 전 이르드로 이사 와서 처음 맞은 겨울에 눈이 정말 많이 왔었다.

차가 미끄러져 유치원 앞까지 가지를 못하여 밑에 세워두고

두 딸 양손에 잡고 바들바들 떨며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고양이 발톱 세우듯 걸어가는데, 옆에서는 털장화 신은 엄마가

작은 아이 친구를 썰매에 태우고

씩씩하게 걸어갈 때 얼마나 허망하고 부럽던지...

폴란드 자코파네에 갔을 때는 길거리가 아이 태운 눈썰매로

가득 메워졌었다.

참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그들 속에 아이 안고 걸어가는 사람은 한국아줌마 나 하나였던듯....

헝가리도 폴란드도 한 겨울에 아이를 썰매에 태우거나 유모차에

태우고 다닌다.

절대로 안고 다니지 않는다.

난 유모차에 있으면 아이가 추울까 봐 꼭 끌어안고 어깨가 빠지게

다녔었는데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겨울에 나도 저렇게 눈썰매에 아이를 태우고

다니고 싶다.

아이도 신나고 나도 덜 힘들고....

큰 아이 때는 아이가 감기에라도 걸릴까 봐서 거의 바깥출입을 삼가고

나가도 꼭꼭 싸매고 다녔었다.

작은 아이 때는 유모차에 태우고 싶었는데 유별난 이 녀석은 유모차에

타면  지구에 종말이라도 오는 줄 알았나 자지러지게 울어서

거의 유모차를 타지 않고 커버렸다.

괜찮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는데 그때마다

몸부림치며 우는  녀석과 함께 유모차가 뒤집어지거나 옆으로 넘어져

위험해 결국은 포기하고 안거나 업고 다녔다.

작은 딸 별명이 "본드걸(007 본드걸이 아니라 접착제 본드)",

"껌", "엄마 그림자"였다.

언제나 코알라처럼 엄마 등 아니면 가슴에 붙어살아서...

 

헝가리는 아이가 감기에 걸려도 비타민C와 까밀라 티를 처방해 주고,

열이 나면 해열제만 준다.

언제나 앓을 만큼 앓고 감기가 떠나간다.

주사를 놔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니 에미 입장에서는 감기처럼 무서운 것이 없었다.

큰딸 22개월 때 열이 39.8도로 오르고 경기를 하며 사지가 뒤틀리는데

남편은 지방에 내려가 있고, 헝가리말을 잘 못하는 나는

교회 유학생들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하여 구급차를 부르고

어린이 병원에 도착하여 정신 차리고 보니 맨발에 슬리퍼를 짝짝이로 신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손은 달달 떨리고....

밤 열 시쯤 되어 응급실에 들어간 아이는 열이 내리지 않아 고생을 했다. 

내 상식으로는 서울에서는 알코올로 닦아주고 해열제를 주는데

헝가리 병원에서는 열을 재고 열이 39도가 되면 응급실에 있는 욕조에

아이를 넣고 찬물로 샤워를 시켰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엄마, 추워요. 살려주세요. 아파요. 집에 가요)

열이 내리면 다시 유아용 침대로 갔다가 다시 열이 올라 욕조 찬물에

들어가기를 그 날밤에 3번을 하고, 아침이 되니 딱딱한 빵에 햄을 준다.

그리고 과일차 한 잔.

세상에.... 22개월 된 아이에게, 그것도 응급실로 실려와서

밤새 고열에 시달리다 초주검이 된 아이에게 병원에서 제공된

아침 식사였다.

빵 안의 부드러운 부분을 따뜻한 과일차에 적셔서는 아이입에

넣어주면서  그날 아침 참 많이 울었다.

때  하은이는 젖병도, 기저귀도 다 졸업을 했는데

남편에게 다시 가게에 가서 젖병을 사 오라고 했다.

입안이 다 헐어 버린 아이에게 빵을 먹일 수가 없었다.

하은이는 19개월에 끊었던 젖병에 우유를 덥혀서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날 경기를 한 원인을 찾는다며 소변검사, 피검사,

엑스레이촬영을 했다.

소변은 기저귀를 때었길래 쉽게 받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양팔과 손등을 혈관을 찾는다며 간호사 셋이 붙어서 얼마나

쑤셨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었다.

엄마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라 하는데 안에서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안절부절못하고 밖에서 기다리다 아이를 안았는데

아이는 새파랗게 질려서 나왔다.

차라리 에미보고 안으라 하고 피를 뽑을 일이지....

둘째 임신 중인 나는 엑스레이 촬영 때는 아이가 너무 울어 촬영이

불가능하다 하여 위에 방탄복 같은 것을 겹겹이 입고 큰 아이를 잡고

겨우 촬영을 했다.

헝가리 병원에는 보호자가 병원에서 함께 있지 않는다.

간호사가 있기에 보호자는 면회시간에만 왔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하은이는 외국인이기에 엄마가 함께 있었는데 보호자용

침대는 당연히 없고 의자 하나 달랑 주는데 임신 5개월인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서 밤을 새우니

다리가 붓고 허리가 아파 몸을 펴기가 힘들었다.

그다음 날 내가 열이 39.6도로 오르기 시작하고 결국  의사가

응급실에 함께 있을 수 없다며  쫓겨나듯이 하은이만 응급실에 놓고

나만 집으로 돌아오는데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엄마, 가지 마요. 엄마, 가지 마요, 엄마~~" 하고 우는 애를 남겨 두고

집에 와서 의사가 처방해 준 해열제를 먹고 누워서 엉엉

대성통곡을 했었다.

그리고 3일 뒤 남편이 가서 하은이를 퇴원시켜 데리고 왔는데

너무 화가 나는 것은 병원에서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욕조 속에 집어넣은 것 빼고는... 중간에 열이 내렸으니

데려가겠다고 해도 퇴원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을 기다리니 경기를 한 원인은 알 수가 없고 열이 내렸으니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그다음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열이 나면 집에서 해열제를 먹이고

39도가 넘으면 남편이 아이를 안고 욕조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따뜻한 물을 담았다가 천천히 찬물을 섞으면서 따뜻한 물은 아래로 빼고

아이 열이 내릴 때까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찬물 속에서 아이랑 논다.

아이는 아빠랑 함께 들어가 있으니 놀라지 않고 아빠 목을 끌어안고

아빠랑 노래를 부르는 사이 열이 내리고 다시 오르면 아빠랑

다시 욕조로 들어가고....

병원에서 주사를 놔주는 것도 아니고 한국처럼 가루약이나

물약을 주는 것도 아니니  굳이 병원에 가서 아이 혼자 놔두어

놀라게 할 필요가 없기에...

 

그런데 벌써 아이들이 커서는 큰 감기 안 걸리고 그렇게 많이

하던 잔병치레도  거의 없이 지내니 옛날일 같다.

지난주부터 하은이가 감기로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한다.

언제나와 같이 비타민C를 먹이고 까밀레 차를 마시게 한다. 

렇게 일주일이 지나니  감기가 떠나가나 보다.

오늘은 기침도 줄어들고 콧물도 거의 말랐다.

 

헝가리식이 이젠 감사하다.

약을 거의 안 쓰고 자라서 그런지 스스로 잘 이겨낸다.

 

눈썰매 보고 처음에 쓰려던 내용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감기 이야기 하다 보니 엉뚱한 이야기를 쓰고 말았다.

원래는 이르든 이사 와서 눈이 많이 온날 남편이 아이들을 위해서

뒷마당에 눈을 쌓아서 경사를 만들어 눈썰매장을 만들어 준 이야기를

쓰려던 것이었는데...

열심히 땀 흘리며 평평한 뒷마당에 눈을 쌓고 넓은 판자를 놓고

다시 눈을 덮어 눈썰매를 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딸들을 위의 사진과 같은 썰매에 앉혀서는

썰매를 태워 줬었다.

큰 아이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한다.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작은 녀석은 기억을 못 하고....

한 번 더 눈이 많이 오면 다시 한번 재현을 해봐야겠다.

작은 녀석도 기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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