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녁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집사님, 저예요."
"어? 세상에. 정말 자기야? 어떻게 지내?"..
2주 전부터 그녀가 자꾸만 생각이 났었다.
전화를 해볼까? 에이~~~ 서울은 한밤중인데.....
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괜히 잘 지내고 있는 사람
흔들어 놓는 것은 아닌지.... 잘 지내겠지? 좋은 사람 만났을까?
그렇게 생각만 자꾸만 나더니 그녀가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게다가 헝가리에 온 지 벌써 20여 일이 된단다.
그래서 그리 생각이 자꾸만 났었나 보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집에 왔다.
얼마나 반갑던지.....
편안해 보여서 좋고, 이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만큼
강해져 보여서 좋았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는 어제 돼지고기부터 샀다.
그녀를 떠올리면 언제나 내가 해주는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을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일이 떠오른다.
"집사님, 집사님이 해주신 고추장 볶음이 제일 맛있어요.
제가 먹어본 많은 고추장 볶음 중 최고예요." 했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돼지 목살 잘라 정성껏 양념을 했다.
그리고 헝가리에 온 지 벌써 20여 일이라 하니 마침 신김치 있어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그녀는 유난히 얼큰한 것을 좋아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치찌개가 많이 먹고 싶었단다.
다행이다.
언제나 잡곡밥인데 오늘은 하얀 쌀밥을 했다.
그냥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온 그녀는 6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하나도 안 변했었다.
아니, 변한 게 있었다.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강해 보였고, 본인 말 표현대로 철도 들었다.
내 표현대로 하면 성숙해져 있었다.
아픔이, 고난이 그녀를 성숙하게 했다.
1995년 추운 겨울에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헝가리 남자와 결혼하고, 나와 비슷한 봄에 헝가리에 와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인연이 오늘까지 13년을 넘기고 있다.
96년 봄에 헝가리에서 올리는 그녀의 결혼식에 한국사람은 나와 목사님,
그리고 그녀의 지인 한 분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오빠 한 분이 와 계셨었다.
그렇게 결혼하고 아들 낳고 살았다.
참으로 힘든 결혼생활이었었다.
옆에서 지켜보기도 힘들었을 때 그랬었다.
대체 뭘 믿고 이 허허벌판 헝가리 왔어? 용감하다.
사랑이 뭐라고..... 내가 한번 작정하고 죽을 만큼 패줄까?
언제나 힘들어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너무나 화가 나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그녀를 위로하고,
또 속상해하고, 화도 내고.
그러면서 참고 버텨왔었다.
그런 그녀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면서 그 힘들고 힘들었던,
그래도 참고 또 참으며 아들 때문에 버텨왔던 결혼을 접었었다.
그리고 모두 정리하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 헝가리를 떠났다.
자식 떼어 놓고 떠나는 에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가끔 내가 전화하고 그녀가 전화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길 6년이 흘렀다.
그사이 그녀의 아들도 훌쩍 크고, 5개월 차이 나는 내 딸도 훌쩍 컸다.
그녀가 아들을 만나러 온 것이다.
6년의 서울 생활에서 그녀는 직장에서 인정도 받았단다.
얼마나 장하던지.....
그리고 그렇게 외동딸을 머나먼 이국땅으로 보내고,
실명할지 모르니 그만 울라고 의사 선생님이 경고할 정도로 울으셨던
친정어머님이 2달 전에 소천하셨단다.
딸 안쓰러워 버텨오신 노모가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어
오히려 안심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너무나 이뻐 보인다.
그리고 너무나 착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아직은 그냥 좋은, 의지가 되는, 너무나 고마운 친구라고.
감사하다.
언제나 그녀가 생각날 때면 좋은 사람 만나 사랑받으며 살기를 바랐었다.
아들을 걱정한다.
헝가리에 와서 5년 만에 아들을 만난 그녀는 많이 울었단다.
그리고 걱정이 많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 그리고 돈 많이 벌어. 정직하게 성실히 일해서
정말 돈 많이 벌어. 그래서 아들에게 나중에 힘이 되어 줘.
아들에게 좋은 친구가 옆에 있기를 기도해.
좋은 사람이 아들 주변에 항상 있기를 기도해.
그리고 정말 자기 잘돼라. 꼭!!"
정말 그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7년의 헝가리 생활 동안 그 가깝다는 비엔나 한 번 못 가본 그녀였다.
아들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것이 많은 그녀다.
난 그녀가 정말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음에 헝가리에 와서는 아들 손잡고 비엔나도 가고,
독일도 가고,파리도 가고, 어디든 아들과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한국으로 아들을 한 번씩 불러 함께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가 아들과 잠시 머물고 있는 예전에 살던 그 동네로
데려다주는데 그녀가 말한다.
"참 멀어요. 정말 이렇게 먼 줄 그때는 몰랐어요. 어떻게 버스 타고
그 무거운 가방 들고 부다페스트까지 다녔는지 모르겠어요."
"멀지. 무지 멀지. 몰랐으니 다 그런 줄 알고 다녔지. 다시 하라면 못하겠지?
그때는 몰랐으니 한 거야. 그때도 난 멀었었어"
그녀가 살던 곳은 이르드 우리 집에서도 15 킬로미터도
넘게 더 안으로 들어가는 도시다.
그러니 부다페스트까지 나오려면 최소한 4번은 갈아타야 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살았었다.
말하고 싶어서, 그냥 한국말로 말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그래서 낯선 나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참 많이 울었던 그녀가 오늘은 많이 웃고, 편안해 보이고, 안정되어 보인다.
내려주고 돌아오면서 보니 또 멀다.
멀었지...... 섬에 갇혀 살듯이 그리 살았었다.
또다시 혼잣말을 한다.
돈 많이 벌어. 정말 돈 많이 벌어서 고생하지 말고 잘살아야 돼.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녀가 주고 간 선물이다.
분첩(?)과 핸드폰 고리.
그리고 사진에는 없는 예쁜 벨트 가방.
분첩과 이 어찌나 예쁜지 안의 화장품을 다 써도 못 버릴 것 같다.
고와서.
핸드폰 고리는 딸들이 눈독을 들이지만 한마디로 거절했다.
안돼! 엄마 선물이거든.
요즘 이상하다.
10여 년 전 인연을 자꾸만 만나니.....
지난주 손님도 꼭 10년 만에 다시 만난 분이시다.
무슨 뜻일까......
하나님 무슨 말씀하시려고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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