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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원인이 무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9. 11. 29.

난 참 둔한 편이다.

금요일 오전 학교에서 신종플루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토요일 점심을 작은 녀석과 중국음식 3가지 시켜놓고 먹는데

혀가 마비가 왔다.

그때도 난 너무나 단순하게 음식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하빈아. 넌 괜찮아? 엄마는 음식이 이상한가 봐. 혀가 마비가 오네?

넌 어때?"     "난 괜찮은데? "

다음날 주일 아침.

예배중에 오른쪽 눈이 너무나 거북하고 볼도 왠지 느낌이 이상했지만

그냥 안경이 깨끗하지 않은줄 알았다. 또 오랜만에 한 눈 화장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집에 오자마자 세수부터 했는데,

 거울을 보니 오른쪽 얼굴이 움직이질 않았다.

눈이 안 감기고, 입도 안 움직이고, 눈썹도 올라가지를 않았다.

양치질을 하면 입 근육이 왼쪽으로 돌아가고,

음식을 씹으면 어찌나 불편한지.....

말도 천천히 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하면 발음이 샜다.

월요일 퇴근하면서 야노쉬 병원 이비인후과를 갔는데

의사가 웃으면서 최소 3주에서 길면 두 달까지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르드에 살기에 부다페스트에서는 치료를 해줄 수 없지만

한번 신경외과에 가보라고 한다.

거기에서도 이르드에 살기에 부다페스트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더니

다시 간호사가 나와서는 의사가 치료를 해준다고 했다고 기다리란다.

30여분 기다리니 젊은 여의사가 와서는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신종플루 주사 때문이 아니라  7번 뇌신경때문이라며

약을 처방해주고 이르드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약을 사서 먹고 다음날 출근을 해서 일을 하는데 다른 데는 참을 만 한데

눈이 영 불편하다. 눈이 감기지를 않으니 안구가 마르고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자꾸만 눈물이 흘러 오후가 되면 반쪽 얼굴이

부었다. 눈은 더 많이 퉁퉁.

드디어 수요일 수업이 끝나자 마자 환경판 정리하고 바로 이르드 병원으로

달려가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왔다 하니 접수창구 나이 드신 분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래서는 순서 무시하고 제일 먼저 접수해주시고는 친절하게

물리치료실까지 나를 데리고 가주신다.

그만큼 내 얼굴이 보기에 심각했었나 보다.

그때는 나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힘들었고 3일을 참았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을 때였다.

안에 들어가 앉으니 전기 봉 2개를 얼굴에 대고 전기 충격 마사지를 하는데

찌릿찌릿한 느낌이 처음해보는 나에게 무서움이었고,

항상 옆에 있던 딸들이 없으니 딸들 눈치 안 봐도 되어서 일까

찔끔찔끔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 눈썹위로 올라가니 전기충격이 더 심해져 아픔이 오고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 버렸다.

금방 괜찮아 질줄 알았었다.

2-3일이면 원상태로 돌아갈 줄 알았었다.

그리고 목요일 부터 연휴라서 힘써 긴장하며 참았던 3일이 지나고

드디어 내일부터 집에서 쉴 수 있다는 안도감과 딸들이 없으니

큰소리 내어 울어도 될것 같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곳에서 언어도 안 통하는 그런 불안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답답함이었을까..... 큰소리로 이 나이에 엉엉 울었다.

그러자 물리치료사가 다른 간호사를 부르시더니 내 손을 잡아 주라 한다.

나를 안정시키고자 이것저것 물어 보시고 본인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아들, 딸 사진도 보여주시면서 너무나 친절하게 해 주신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그분은 바이러스 때문이란다.

2달은 걸릴 거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풍선을 불고 열심히 껌을 씹으란다.

껌 씹는 내 모습을 보니 표정이 불만 많은 그래서 누구든 건들기만

해봐라..... 하는 불량스러운 표정이다. 근육이 뒤틀려서.

목, 금요일은 추수감사 연휴라서 어찌나 다행인지......

금요일 오전,

다시 부다페스트에 있는 신경외과에 갔다.

거기서도 이것저것 검사를 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본인은 딱 이거다 말할 수는 없단다.

열도 없고 다른 곳은 말짱한데 얼굴만 정확히 반쪽이 마비가 되었으니

바이러스라고 할 수도, 또 뇌신경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때문이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된 것도 아닌데 신종플루 주사 때문이랄 수도

없단다. 맞는 말이다.

난 지금은 신종플루 예방 접종 부작용이든 바이러스든 아니면

7번 뇌신경의 문제든 상관이 없다.

최소 3주에서 길면 4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오른쪽 얼굴의

마비만 풀려 원상태로 돌아오기만 하면 말이다.

정말 말하는데도, 이 닦는 데도, 음식을 섭취하는데도 불편하다.

무엇보다 눈이 문제다.

운전을 할 때도 힘들고, 책을 보는 것은 더 힘들다.

 

그래도 물리치료를 학교 가까이에 있는 병원에서 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하고, 또 얼굴 반쪽만 마비된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오른쪽 얼굴과 함께 손과 다리까지 마비가 왔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불편은 하지만 그래도 운전도 할 수 있고 애들 챙길 수도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또 치료받는 내내 감사한 것이 딸들이 아니라 내 얼굴이라서

얼마나 감사한지.

최소 3주의 경우에 내가 포함되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열심히 불리지도 않는 풍선 입에 달고 다니고,

껌도 열심히 씹는다. 불량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