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우면서 난 친정엄마가 더 존경스러워진다.
한 번도 성적표 얘기를 한 적이 없고 시험이나 공부에 대한 언급을 안 하셨다.
그저 믿고 기다려 주셨고 성경을 읽었나 기도를 하나 그런 신앙적인 부분만
언급을 하셨었다.
자식을 키우다 보니 그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매일매일 느낀다.
난 딸들의 성적도 신경 쓰이고 시험이 있나, 숙제는 했나..... 은근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두 딸이 다 성실해서 언제나 숙제를 매일 먼저 하고 시험이 있다면 또 미리미리
준비를 하니 성적도 실망시키지 않게 잘하는 편이다.
어느 날,
작은 녀석 성적표가 나왔는데 대부분의 과목이 99.8. 99.7. 99.6.....
어라?
92.5다. 히스토리가. 물론 반올림해서 92.5도 A다.
무슨 일?
이때 그냥 넘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미라서 작은 녀석을 불렀다.
하빈아~~~~
왜.
히스토리가 92.5야.
그런데?
아니, 92.5라고.
엄마, B도 훌륭한 거예요.
그럼. B도 훌륭하지.
근데 엄마는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까워서. 0.5가 아까워서 그러지.
엄마, 내가 그동안 A를 너무 많이 받았지요? 그래서 엄마가 B가 훌륭한 것을 잊은 거예요.
그리고 하는 말이 재밌다.
엄마, 시험 못 봤다고 우는 것은 나쁜 버릇이에요.
시험은 다음에 또 있고, 또 있고 또 있어요. 그때 잘하면 되지.
그렇게 시험 못 봤다고 속상해하고 울고 할 거면 공부 좀 하든가.
시험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닌데 왜 속상해해요?
그러더니 뒤돌아 서면서 또 그런다.
내가 그동안 A를 너무 많이 받았어.......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 했다.
그렇지.
B도 훌륭하지......
그러면서도 0.5가 아까웠다. 속으로만.
이것이 11월 초의 이야기다.
지난주에 또 작은 녀석 성적이 메일로 왔다.
어?
히스토리가 또 92.5다.
그래서 히스토리만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100. 95.... 85?
오잉~~~~ 85라니.....
진짜 훌륭한 B를 받기로 했나?
인내심 없는 에미는 또 작은 녀석을 불렀다.
하빈아~~~~~
왜?
히스토리가 92.5야.
응.
왜?
그냥.
근데 85도 있다?
응.
왜?
모르고 이름을 안 써서 10점이 깎여서 그래.
문제는 하나 틀렸는데 이름을 안 쓰면 10점이 깎이거든....
아~~~~ 그랬구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
다행이다. 그렇지? 겨우 10점 깎여서. 이름안썼다고 0점처리 하면 무지 속상했을 텐데
겨우 10점만 깍여서 진짜 다행이다.
작은 녀석 표정이 뭘 그런 걸 가지고 다행이라 하나..... 그런다.
우 씨~~~
그래도 이번에는 B도 훌륭해요 소리는 안 들어서 속으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성적 이야기를 안 하고 참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시험이 있나 없나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그때 우리는 참 살기가 팍팍했었다.
그러니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난 엄마처럼 하고 싶은데
참 힘들다.
분명 B도 훌륭하다고 입버릇처럼 딸들에게 말해왔었다.
B이상만 받으면 된다고. C는 엄마 기준에서는 게으름으로 보이니까
B이상이면 된다고 했었다.
그래 놓고는 은근히 A를 기다린다.
그러다 결국 작은 녀석에게 한소리 듣고야 말았다.
이래서 자식 키우면서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머릿속으로는, 이론적으로는 다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안 되는 것들을
나도 경험하면서 인정하게 되고 또 실수하면서 그렇게 자라나 보다.
B도 훌륭하지.
최선을 다했을 때 C까지는 봐줄 수 있지.
머릿속은 언제나 이렇다.
마음까지 그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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