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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하빈이 이야기

하빈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1. 3. 28.

 

금요일 Elementary 채플시간에 작은 녀석이 앞에서 글을 읽는다.

아니 페이튼과 숀과 함께 연극을 했다고 해야 옳겠다.

생각지 못한 일이라 (평소 작은 녀석은 시시콜콜 말을 안 하는 편이다.)

마침 카메라 가지고 간것이 어찌나 기뻤던지.....

사진을 찍었다. 작은 녀석을.

작은 녀석이 큰소리로 읽는 모습이 가슴이 뛰고 너무 기뻐

도대체 무엇을 읽는지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작은 녀석 4살때.

7 가정 정도가 한집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도 두 딸을 데리고 그 집으로 갔었다.

식사도 하기 전에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녀석이

유리탁자에 머리를 부딪치며 넘어졌고, 작은 아이를 밀어 넘어트린

6살 남자아이가 하빈이 배 위에 올라타서 주먹으로 때리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다들 뛰어가서 그 녀석을 떼어 놓고 난 너무 놀라 파랗게 질린

하빈이를 안았다.

내 품에 안겨서야 겨우 숨죽이고 우는 하빈이.

그 녀석 엄마가 왜 동생을 때렸는지 물어보니,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제가 나한데 야라고 하잖아. 내가 두 살이나 많은데."

하빈이가 맞은 이유는 그것이었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헝가리 유치원을 다니던 하빈이는

이름 부르는 것이 익숙해 있었다.

한국 사람들 만날 때는 옆에서 언니라고 해, 오빠라고 불러....

알려줄 때였다.

그때 난 소리도 못 내고 우는 하빈이에게

"오빠가 오빠라고 안 부르고 야라고 불러서 화가 났나 봐.

다음에는 꼭 오빠라고 불러, 알았지?"

그때 다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었고,

난 아이가 토하면 그때 부르겠다 하고 하빈이를 그냥 꼭 안고만 있었다.

오랜만에 모인 이 자리가 나로 인해 방해받게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 큰.

 

그리고는 식사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며칠뒤 함께 그 자리에 계셨던 한화 형님(그분은 사모님 소리를

극구 사양하시고 싫어하셔서 같은 회사 분들이 형님이라 부르셨고

나도 한화형님이라 불렀었다.)이 미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잠시 밖에서 뵙자 하셔서 나갔었다.

그때 그분이

"하은엄마, 다음에는 절대 그러면 안돼.

바로 그때 앰뷸런스를 불렀어야 해. 그래야 하빈이도 안심이 되고

그 상대 남자아이도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심한 결과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조심하게 되지.

언제나 그렇게 참지만 마. 알았지?"

하시고는 아이들에게 작은 기념이 될만한 정성이 깃든 선물을 주시고는

돌아가셨다.

 

며칠 뒤 우리 집에 미국 침례교회 담임 목사를 하고 계시는

매튜네 식구와 질리안 선교사님 부부가 오셨는데 하빈이가

내 귀에 속삭인다.

"엄마, 뭐라고 불러? 오빠야?"

"아니, 매튜는 미국 아이니까 오빠지만 그냥 이름을 부르면 돼. 알았지?"

그날은 특별한 것 없이 4 녀석이 아주 재미있게 놀았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잘 알고 지내는 한국가정집에 가게 되었는데

작은 녀석이 또 묻는다.

"엄마, 뭐라고 불러?"

"000는 오빠라고 부르고, 000는 동생이니까 이름을 불러."

그런데 그날은 하빈이가 말이 없이 그냥 지켜보거나 옆에 있기만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하빈이는 집에서는 엄마, 아빠, 언니랑 말을 아주 잘하는데 밖에만

나가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처음에는 괜찮겠지...... 했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선생님과 아주 잘 지내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한글학교에서, 교회에서, 아는 한국사람 가정에서 말을 안 해도

친구들과는 잘 지내니 나중에 크면 괜찮겠지 했었다.

목이 말라 물을 사러 가거나, 맥도널드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서도

하은이가 주문을 했고 언니가 없으면 먹고 싶다가도 '안 먹을래' 포기해

버리는 작은 아이.

나중에 좀 더 크면 하겠지..... 했었다.

 

한 달 전쯤,

"하빈아,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어른들에게 큰소리고 인사를 해.

그냥 머리만 숙이거나 아주 작은 소리로 인사를 하니 안 한 줄 알고

오해를 하잖아."

"엄마, 난 인사해요....."

그리고

2주 전쯤 작은 사건으로 작은 녀석 맘이 많이 슬펐다.

많이 많이 울면서 말을 한다.

"엄마, 난 진짜 노력을 하거든요. 큰소리로 말도 하고 대답도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엄마는 자꾸만 나에게 부담을 줘요."

"하빈아, 미안해. 엄마는 하빈이 가 그렇게 부담을 느끼는 줄 몰랐어.

진짜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다음날,

작은 녀석에게 4살 때 있었던 그때 일을 이야기해 주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때 엄마가 잘못했다고.

하빈이 가 잘못한 것이 아니고 폭력을 쓴 그 오빠가 잘못했는데

야, 놀자.라고 말한 하빈이가 잘못한 것으로 말한 엄마가 너무 미안하고

잘못했다고. 엄마를 용서해 달라고.

 

지난주 봄방학 중에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하빈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단다.

맥도널드에서 파는 것으로.

손을 잡고 맥도날드에 갔는데 자기 순서가 오자 갑자기 말문이 막힌 하빈이.

"하빈아, 주문을 해. 아이스크림 달라고 해."

"..........."

"응? 그냥 아이스크림 주세요 해. 엄마가 그 아이스크림 이름을

모르잖아."

"........

엄마, 이름이 생각이 안 나."

"하은아, 하은이가 주문을 해.'

언니가 대신 주문을 해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오는데

하빈이가 내 손을 잡더니 묻는다.

"엄마, 화났어?"

"응? 왜? "

"내가 말을 안 해서. 내가 아이스크림 달라고 말을 안해서 엄마 화났어?"

"아니. 엄마 화 안 났어. 엄마가 얼마나 하빈이를 사랑하는데.

엄마 진짜 화 안났어. 엄마도 얼마나 자주 잊어버리는데.

생각 안 날 때 진짜 많아."

 

정말 속이 뭉클하고 눈물 나오려는 것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저 어린 내 딸이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왜 말을 안 하느냐고

왜 저리 조용하고 말을 안 하냐고..... 할 때마다 얼마나 속이 탔을 까 싶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 6살 남자아이 손을 잡고 하빈이에게 와서 사과하라 하고

다음에는 내가 2살이 더 많으니까 야가 아니라 오빠라고 해.

친절하게 알려주라고 그렇게 하고 싶다.

계속 자기가 잘못 말을 해서 그렇게 심하게 맞은 것이라 생각하고

또 실수를 할까 두려워 밖에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 작은 딸.

 

하빈아,

엄마 화 안 났어.

엄마는 지금 하빈이가 좋아.

괜찮아, 아가.

하빈이가 준비가 되면 그때 말하면 돼.

그래도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은 말을 잘해 얼마나 기쁜데.

성경에도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거든.

우리 하빈이는 진짜 말을 잘 들어주고 많이 들으니까

성경말씀 대로 사는 믿음의 딸이네.

힘들어하지 마, 엄마 아가.

다시는 하빈이에게 큰소리로 말하려 노력하라는 말 하지 않을게.

미안해. 우리 아기.

사랑해, 엄마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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