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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언젠가는 우리도 성묘 가자.....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7. 10. 5.

Tv를 보던 작은 녀석이

엄마 성묘가 뭐야?

응? 성묘?

헐~~~~

그래서 설명을 해주었다.

제사는 알지?

알지. 그럼. 그걸 모를까....

제사는 우리는 드리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다는 딸. 

서방님이 아버님 산소 다녀오셔서는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셨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한국 들어가도

제대로 다녀오지도 못한 아버님 산소다.

하빈이는 기억을 못 한다.

하은이는 기억하려나?

정말 언제나 가족이 다 같이 아버님 산소 다녀오려나...

추석 성묘는 가능하려는지.....

좀 높은 곳에 있는데 이제는 차도 올라갈 수 있게 길을 냈더라는.

 

 

친정 언니가 친정아빠 수목장 한 곳에 다녀와서

사진을 보내주었다.

작년 12월 이니 얼마 안 되었는데....

그새 좀 바뀌었더란다.

 

수목장으로 잠든 분들 성함이...

이곳 한 귀퉁이에 아빠가 있다.

 

 

 

 

항상 미안타.

언니랑 형부한테.

그리고 남동생이랑 올케한테.

도대체 멀리 산다고 뭐하나 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참 맘이 허하고 도대체 난 뭐하고 사나....

싶은 그런 추석이었다.

이러고 22년을 살았으니.

애들 키울 때는 나름 추석을 알려주고자

딱딱한 송편도 빚고, 기름 냄새 풍기면서 전도 부치고... 했었다.

그러면서 난 여기서 이렇게 명절을 보내는 거야.

위안을 삼았었다.

이젠.... 그런 것도 위로가 안된다.

어쩌다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기고.

카톡으로 아버님 산소, 친정아빠 수목장

사진 보다가

언제고 우리도 가족 다 같이 성묘를 가야지....

했다.

 

아빠 수목장에 가신 엄마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엄마랑 언니가 함께 있는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우린 아빠랑 함께 있을 때 한 번도 정말 단 한번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어려서는 긴장해야 했고, 불안했었다.

좀 커서는 그런 아빠가 힘들어서 피했고,

머리가 더 커져서는 화를 냈었다.

그러지 말자.... 하다가도

몇 마디 말이 오가다 보면 아빠랑은 대화가 안 되었다.

감정이 격하게 되고 결국 내가 피하던지, 아빠가 화가 나 나가던지.

언니는 참았고, 남동생은 어렸다.

나중에 나중에 남동생이 커서는 감사하게도 아빠를 옆에서 챙겼다.

난 멀어도 너무 먼 헝가리에 있고,

아빠의 화풀이 대상은 착한 언니랑 형부였다.

그리고

만만한 엄마.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엄마가 있어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하면 너무나 불쌍한 아빠.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상처를 가슴에 담고 평생을 살면서

밖으로만 방황하며 떠도시던 분.

나이 드셔서는 더 심해지셔서 본인도 힘드시고 가족도 지칠 만큼 지쳤었는데...

이제야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쉬시는 아빠.

 

편안해 보이는 엄마랑 언니를 보면서 지나간 시간들이 아득하다.....

아빠가 너무 엄마랑 언니를 힘들게 하실 때 속상함에 기도했었다.

엄마보다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고

엄마에게 휴가처럼 3년의 시간을 주세요...라고.

아빠는 너무도 건강하신데 엄마는 위암 수술에, 뇌출혈에....

그러다 돌아가시면 엄마의 삶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와서 했던 기도였었다.

젊어서 결혼하고 하루도 편한 날 없이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이 숨이 막히게 먹먹했었다.

그런데 기도를 바꾸고 싶다.

엄마한테 3년이 아니라 좀 더 긴 휴가를 주세요. 

건강하게 좀 편안하게 계시다  하나님 부름 받으시게....

 

낮에 혼자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 어머님,

친정엄마 그저 건강하시게 자손들 위해 기도하시고

축복하시며 그리 사시다가 잠자듯 그리 편안하게

하나님 부름 받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