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나의 42살 생일이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참 편안해진다.
사실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챙기거나 케이크 놓고 노래 부르는 거
어색하고 낯설다.
나 어렸을 적에는 우리 삼 남매 생일은커녕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설날, 추석.....
특별히 챙겨본 적이 없다.
워낙 살기가 힘들고 팍팍해서 하루하루가 그저 그만그만했다.
그래도 생일이 없다고, 크리스마스라고 선물이 없다고,
남들 다 놀러 가는 어린이날 집에 있다고 투정이나 서운함은 없었다.
당연한 거였고 우리 집 주변의 아이들도 우리와 같았으니까
더더욱 모두가 다 이런 줄 알았다.
내 기억에 5살쯤 되었나.....
크리스마스라고 기억을 하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맡에 에펠탑
그림이 있는 '사브레'라는 과자가 있었다.
그다음부터 난 사브레 과자를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말 너무너무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었다.
지금 먹으면 그 맛은 아닐 게다.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소풍이라고는 우습고 나들이를 간 적이 있다.
토요일 반공일 수업을 하고 삼 남매가 아빠가 모이라고 지시한
덕수궁으로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모였다.
엄마는 오전에 김밥을 싸고 한복(정말로)을 입고 아빠랑 덕수궁 앞에
와계셨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4 식구만 간 것은)이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김밥도 먹고 약간은 어색해하며 놀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친구들끼리 서로 생일을 챙겨주면서 난
내 생일을 알게 되었고 음력은 계산이 어려워 나 스스로가 양력으로
정해서 친구들에게 알려주면서 생일 선물도 받고 레스토랑도 가고 그랬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우린 누구의 생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약혼자 소개나,
결혼식, 아이 돌 등을 주제로 만나게 되었다.
다들 결혼과 직장, 그리고 대학원 공부와 유학 준비 등으로 서로가
너무나 바빴다..
더욱이 생일은 친구가 아닌 남자 친구나 남편이 챙겨주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러다
나도 결혼을 하고 남편이 생일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선물도 주고, 외식도 하고....
그리고 내가 미리 내 생일이라고 중계방송을 하면서 선물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생일 전날 남편이 퇴근하면서 전화가 왔다.
내일 생일인데 아침은 시간이 없으니까 저녁에 케이크를 사 올 거냐고....
나의 대답이야 당연히 "네. 고맙습니다."이다.
아이들하고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초를 켜고 노래를 부르고
밤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함께 노래 부르고 웃을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침에 큰 아이 도시락 싸느라 정신이 없는데(그래도 내 생일이라
내가 좋아하는 잡채를 하고 잡채 좋아하시는 선생님들 것까지 싸느라 더 정신이 없다.)
남편이 흰 봉투를 내밀면서 "현찰이 좋지. 아마 핸드백 하나는 살 수 있을 거야" 한다.
갑자기 목이 멘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챙겨주는 남편이 고맙고,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라 더 기쁘다.
작년에 아이들이 자기들 용돈으로 커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정말
큰 커피 컵을 사줬다.
올 해는 엄마랑 같이 가서 엄마가 원하는 선물을 고르면 자기들이
돈을 내겠다고 벼른다.
어제 같이 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는데 큰 아이가 갑자기
다시 뒤로 되돌아가잔다.
가보니 하얀 여름 재킷이 심플하면서 예쁘다.
예상보다 조금 비싼데 큰 아이가 괜찮단다.
자기들 돈 많다고.....
일주일에 500 포린트(2.500원)의 용돈을 준다.
그러면 주일헌금 100 포린트를 내고, 십일조 50 포린트 내고
350 포린트를 본인들이 사용을 한다.
그동안 모은 돈이 꽤 되나 보다.
둘이 3.000 포린트씩 모아서 에미 선물로 6.000 포린트 썼으니
마음이 쪼금 짠할 게다.
적은 용돈으로 모으려면 앞으로 아이스크림은 포기해야 할 듯.....
그리고 돌아오는데 남편이 전화가 왔다.
외식을 하자고.....
어제 케이크로 충분한데 외식까지나..... 미안 시리게...
하지만 나야 한 끼 식사 준비를 안 해도 되니 사양할 이유가 없다.
땅콩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앉자마자 땅콩부터 깐다.
항상 땅콩으로 배를 채우는 것 같아서 조금만 먹으라고 하는데
오늘도 땅콩으로 배를 채울 모양이다.
난 달라스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막상 먹어보니 지난번에 먹은 텍사스 스테이크 더 맛있다.
하은이와 아빠는 두 사람분의 메뉴를 선택했는데 결국은 남아서 포장을 해가지고 왔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아이는 칠면조 가슴살 안에 햄과 치즈를 넣어서 튀긴 요리를 주문했는데
몇 입 먹더니 배가 부르단다.
결국은 아빠가 마무리를 했다.
항상 다음에는 작은 아이 것은 주문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식당에 가면 또
주문을 하게 되고 남은 음식 포장해서 집에 가지고 오게 된다.
올 해는 10여 일 동안 생일을 한 것 같다.
몇몇 친구가 함께 시간 맞추기 힘들어 지난주에 점심을 함께 하면서
생일 챙겨주어 더 그런가 보다.
타지에서 만나 함께하며 정들고 서로 알아가고 그러다 작년부터
생일을 서로 챙겨주기 시작했다.
예쁜 목걸이를 선물로 받았다. 무엇을 받고 싶으냐 묻길래 하은이가 생각이 나서
나중에 우리 큰 딸 학교에서 하는 밸런타인 파티 때 걸면 예쁘겠다 싶어
하트 목걸이를 이야기하니 정말 내 목에 걸어주었다.
소중히 목에 걸고 다니다가 부쩍 커지는 딸과 함께하면 정말 좋겠다 싶다.
우리 구역은 구역원 생일이 있는 구역예배 때 케이크를 준비하여 예배 후
식사 때 함께 노래 부르고 후식으로 먹는다.
처음에는 많이 쑥스러워했는데 이젠 정말 즐겁고 기쁘고 케이크 먹는
재미도 좋다.
이번 주는 내 생일이라고 쵸코 케이크를 사 오셨다.
그런데 우리 구역의 꼬마 구역원들이 군침을 삼키며 계속 언제 예배 끝나나
기다리다가 지쳐 엄마 귀에 속삭인다.
언제 끝나냐고....
한바탕 웃고는 기도로 마치고 드디어 케이크 먹는 시간.
벌써 기도 준비 끝.
예쁜 아가들.
이렇게 거창한 생일 파티가 끝났다.
처음이다.
항상 남편과 단둘이 넘어가거나 아이들과 함께 단출하게 지나갔는데....
이런 날도 있겠지 하며 감사함으로 받는다.
아!
태어나 처음으로 축하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아마도 핸드폰 바꾸기 전까지는 보관하고 한 번씩 읽어보며 뿌듯할 것 같다.
예년과는 너무 다른 생일이라 갑자기 어리둥절하지만 감사하다.
내 나이 42살
이제 머지않아 50을 넘기겠지....
그런데 나이 먹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다.
머리에 흰머리가 나서 염색을 하고,
눈이 침침해 작은 글씨는 힘들어 안경을 벗어야 하고,
그전에는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며 자리 털고 일어났는데,
이젠 김치만 담가도 아침이면 손목이 아프고,
마당만 쓸어도 다음날 파스를 붙여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좋다.
더욱이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한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기에 더욱 좋다.
오늘 같은 추억이 모아지고 사랑이 깊어지며 함께한 시간들의
그림이 커지니까..
그래서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다.
내년에는 우리 딸들이 더 크고 자라겠지.
내년 생일에는 남편의 머리에도 흰머리가 더 많아지겠지.
난 내년에는 어떻려나.
여보, 고맙습니다.
두 공주님 ,
사랑해. 너무너무 많이 많이
그리고 친구들아 고마워.
우리 귀한 에스더 구역 지체들도 감사, 감사
이렇게 아름답고 서로를 위하는, 그리고 만나면 행복하고 즐거운
구역이어서 너무나 감사. 감사.....
'우리들의 이야기 > 우리 가족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95년 헝가리에서 살던 때에는.... (0) | 2007.06.01 |
---|---|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 밭에~~~~~ (0) | 2007.05.27 |
헝가리 땅에 한국 고추 심기 (0) | 2007.05.04 |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 (0) | 2007.04.28 |
송별 식사 (0) | 2007.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