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담당하시는 선교사님께서 주일 아침
하은이의 걱정을 말씀해 주셨다.
주일 어린이 예배 때 누구누구가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하니까
하은이가 그랬단다.
"선교사님, 이러다가 우리와 선교사님 댁만 남으면 어떡해요?"
우리 하은이가 많은 이별을 겪으면서 힘들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은이 26개월 부터 왕래하며 가까이 지냈으니
갈 것이라는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일 오후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서운함에, 그 동안 함께한 10년 하고도 2개월의 시간이 짧지 않아
생각보다 오래 그 빈자리가 클 것 같아서.......
대부분 2년에서 길게는 6년을 함께 부다페스트에서 생활했는데
이번에 귀국하는 집은 꼭 10년을 함께 했으니
하은이가 걱정할만 하다.
그리고 하은이도 이젠 외로움을 아나보다.
아침에 일어나 몸도 마음도 무거워 전화를 했다.
예약되었던 영어 레슨을 취소하기 위해서.
그리고 스누피 예방 접종하려 막 나가려는데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컨테이너 패킹해야 하기에 오늘 냉장고, 냉동고 정리한다고.
나와 선교사님에게 먼저 드리고 싶다고.
그 마음이 고맙다.
대부분 귀국하기 전에 냉장고와 냉동고, 그리고 부식부터 정리를 한다.
떠나시는 분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옷과 그릇 등 여러 가지를 미국 사람들처럼 가라지 세일을
하지 않고 한국분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신다.
그러면 나는 차를 가지고 가서 트렁크에 가득 싣고는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은 선교사님과 좀 어려운 분들에게.
그리고 우리도 도움을 받고.
그래서 스누피 예방 접종하고 차를 돌려 그 집으로 갔다.
갑자기 결정된 귀국이라서 아직 다 실감이 안 난다.
공항에서의 이별도 힘들지만 짐 쌀 때도 힘들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전화만 하려 했는데 또 이렇게 오고 말았다.
미역, 당면, 간장, 액젓, 된장, 고춧가루, 나물, 멸치,........
정성껏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멸치 액젓 떨어졌는데 마침 잘됐다. 고맙게 잘 쓸게요."
"애들이 호떡 좋아하는데 당장 만들어 주어야겠다. 고마워요."..
헝가리에서 살면 유효기간은 무의미하다.
된장도, 액젓도, 당면도 무엇이든 유효기간 1년 이상 지난 것도
여기서는 다 사용한다.
그래도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부목사님은 혹시 몰라 전화로
여쭤보고 따로 정리를 했다.
어느새 트렁크 가득 차고 하은이 옷까지 챙겨주신다.
그 마음이 고마워 차에 실으면서 아려오기 시작한다.
정말 가는구나.......
6년이 지나면서는 안 가기를 바랐고, 7년, 8년이 지나면서는
안 가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오래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 반 했었는데.....
9년을 넘기고 10년이 지나니 정말로 간단다.
선교사님 댁과 우리 집, 그리고 다음 주에 우리 집에 오실
동유럽 선교사님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트렁크에 가득 실고 오는데
마음이 또 울적해진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짐 정리를 할 수 있을까?
내 손으로 일일이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버릴 것 버리고, 꼼꼼히 체크해 가며
정리하게 될까?
그때 나도 이것저것 잘 챙겨서 남아 계시는 분들과 선교사님들께
나누어 드리고 가야겠다....... 생각만 하는데도 눈물이 핑 돈다.
집에 와서 이렇게 저렇게 짐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젤을 한쪽에 놓았다.
하은이에게 선물로 주시고 가셨다.
하은이가 지난주부터 이젤을 갖고 싶어 했는데 이렇게 또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하은이에게 이젤이 왔다.
뒤에 그분 이름이 적혀 있다.
하은이 여기에서 그림 그릴 때마다 생각하겠지.
그리고 나도 볼 때마다 그림 전공했다는 그 엄마를 보고파하겠지.
유난히 눈물이 많고 아이 때문에 참 많이 울었던 엄마.
순해서 누구나 와 잘 어울렸고, 웃음 많아 큰소리로 잘 웃었던,
정이 많아 여기저기 마당발로 다녔었던, 누구나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주머니 열고 도와주기를 기꺼이 했던, 하나님을 모르고 왔다가 세례 받고,
집사 되고, 여전도 회장까지 지내고, 구역장으로 섬기다가 가시는 분.
나도 자주 내 속 이야기 잘 터놓았던 그 사람이 간다.
다음에는 짐 싸기 전에 부식창고 정리한다고, 냉장고, 냉동고
비운다고 오라 해도 안 가련다.
선교사님들께 전달해 달라 해도 난 안 가련다.정말 안 갈란다.
이제는...... 돌아서 올 때마다 눈물 훔치며 어떤 때는 한쪽에 차 세우고
울며 오는 이 길을 이젠 안 하련다.
그냥 교회에서, 모임에서 인사하고 조용히 집에 있으련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마음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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