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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슈라니 뻐뻐, 유디뜨 머머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9. 6. 8.

예배 후에 하은이 대부 대모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이들 어렸을 적에는 일 년에 두 차례 씩 만나곤 했었는데

아이들이 크고 슈라니 뻐뻐가 아프니 나중에 보자고 하면서 미루다 보니

어느새 3년만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슈라니 뻐뻐는 슈라니가 한국으로 발령받아 한국 헝가리대사관 근무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었다.

그리고 헝가리로 귀국하고 다시 인도로 발령받아 일을 하러 가고

지금은 은퇴를 해서 집에서 가끔씩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도움 청하는 사람들

도와주면서 지내고 계시다.

하은이가 태어나자 마자 변호사인 유디뜨 머머는 바로 대부대모가 되는 절차를 밟았다.

그렇게 슈라니와 유디뜨는 하은이의 대부, 대모가 되었다.

우린 기독교라고 말을 했지만 본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 하면서 말이다.

난 우리나라의 카톨릭에서 말하는 대부, 대모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말 자기 아들처럼 본인들이 책임을 다하는 딸인 것이었다.

하은이의 성적과 학교 생활, 친구..... 관심도 참 많아서 성적표도 가지고 가서

보여주곤 했었다.

어디를 가든지 꼭 하은이의 선물은 잊지 않고 사 왔고 나중에는 하빈이 에게 미안했는지

하빈이 선물도 꼭꼭 챙겨주시곤 했다.

그들에게는 아들 다니엘이 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8월에 여자 친구랑 헝가리를 방문한단다.

그때 우리 집에서 다시 모이자고 했다. 더니(다니엘)랑 함께 말이다. 

날씨가 좋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서 마당에서의 식사는 실내가 되었다.

유디뜨의 텃밭. 두 사람 먹거리 따기는 충분하지 싶다.

창틀에는 화분에서 키우는 허브도 있다.

갑자기 무언가를 따는 하은이의 대모 유디뜨 머머.

 하은이 손에 쥐어 주어서 보니 열매다.

그냥도 먹고 케이크에 장식도 하고.....

 여기저기 각 나라에서 근무한 슈라니 뻐뻐 집에는 장식품이 참 많다.

 한국에서 근무하실 때 사신 자개 보석함도 보이고,

 천하대장군, 지하 여장군도 보이고, 부처상도 있고...

 우리를 위해 구야쉬 레베쉬를 준비하셨단다.

아이들이 먹어 보더니 맛있다며 먹으니 유디뜨 머머 기분 무지 좋아지셨다.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는지.......

뻘로찐따도 만드셨다.

내가 좋아하는 뚜로 뻘러찐따로. 

 슈라니 전 부인의 아들 이스트반이 우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놀러 왔다.

같은 동네 가까이에서 살아 자주 왕래를 한다. 물론 전 부인도 함께.

그런데 항상 같이 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전 부인인 주저니니는 안 오셨다.

 아들이 이제 5주가 되었단다.

이스트반, 살도 많이 찌고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이 이젠 가장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만난 지가 벌써 15년이니 참 세월이 많이 지났다.

50대였던 슈라니 뻐뻐는 벌써 70이시다.

 남편은 고기를 굽고,

유디뜨 머머가 하은이 하빈이 온다고 준비를 참 많이 하셨다.

내가 만들어 가지고 온 김밥도 올려놓으시고..... 

남편이 전화통화 중 무엇을 가져갈까 물었더니 김밥이 먹고 싶다 하셨다

해서 주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말았다.

서울에서 5년을 근무했던 슈라니, 유디뜨는 김밥과 불고기, 잡채를 무지 좋아한다.

8월에 우리 집에 오실 때는 잡채도하고 불고기도 하고 만두도 해야겠다.

 벌써 70이 된 하은이의 대부 슈라니 뻐뻐.

대수술도 여러 번 하셨는데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그래서 우리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면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