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마당에서 따온 사과와 배를 가지고 출근하는 차 안에서 커피랑 먹는 것이
나의 아침이다.
그리고 잘라서 작은 봉지안에 넣어가서는 간식시간에 먹는데 간식이 부족하다는
에밀리에게 한조각 주었더니 맛있다며 또 달란다.
그 모습을 본 민우가 가만히 나에게 와서는 손가락으로 내 사과를 가리킨다.
"먹고 싶어요?"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
그리고 사과 한쪽 들고는 빙긋이 웃으며 자기 자리로 간다.
우리 아가들도 가을 맛을 아나보다.
왜냐하면 우리 집 사과를 입에 물면 추석이 입안 가득 고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주 오래전 추석 때면 먹던 사과가 지금 내 입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 집 사과나무 속에 추석이 있나 보다.
작고 못난이지만 참 맛있다.
왜냐하면 나 어릴 적 추석이면 먹던 그 사과맛이 있어서 난 좋다.
이름은 같지만 한국의 배와는 또 다른 배.
난 저렇게 초록 짙을 때의 배가 참 맛있다. 그래서 익어 갈색이 되기 전에 미리 따서는
냉장고에 넣어 놓고 아침이면 두 개씩 꺼내서 깎아가지고 출근을 한다.
이 초록 짙은 배를 먹을 때면 이른 가을 아침 따먹던 색 고운 연두색 대추가 생각이 난다.
뾰족한 씨앗을 입안에서 살살 돌리다가 돼! 뱉곤 했었다.
담장 옆에 있던 대추나무는 가을이면 내 간식이었다.
요즘 과일처럼 아주 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맹숭맹숭하지도 않았다.
난 단단하면서도 씹으면 질리지 않게 단 연두색 대추가 참 좋았는데
지금 우리 집 배가 그렇다.
배를 먹으면서 어렸을 적 따먹곤 했던 추석 대추를 떠올린다.
언제나 많은 사과를 주던 나무였는데 아픈가 보다. 아니 이젠 너무 나이가 들었나 보다.
사과가 미처 영글기도 전에 다 떨어진다. 아마도 나무가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작은 사과나무였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저리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사과를 매달고 있다.
한 번씩 나가서 적당히 영근 사과를 미리 따서 냉장고에 넣었다.
우리가 먹는 속도로는 저리 다 떨어져 썩기 때문이다.
하은아, 사과 깨끗이 씻어서 학교 친구들 간식시간에 하나씩 주지 그래?
작고 못난이지만 맛있으니까.....
그리고 너무 약해 언제 크나 했던 사과나무가 올해 사과 몇 알을 맺었는데
아마도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튼실한 사과나무가 될 것 같다.
우리 집 마당의 사과나무가 세대교체를 하려나 보다.
너무 작아 눈길도 주지 않았던 나무가 저리 자라고,
언제나 열매를 주려나 했던 나무는 이젠 가지가 휘어지게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10여 년 우리에게 성실하게 사과를 주던 나무는 이젠 쉬려나 보다.
헝가리에서 맞는 17번째 추석.
이젠 덤덤해졌다.
처음에는 참 많이 울었는데......
이상하게 설날에도, 정월 보름에도, 봄이 되어도 괜찮다가 추석만 되면
우울하고 힘들었었다.
그래서 떡도 쪄보고 맛없고 딱딱한 송편도 만들어 보고.....
10년이 넘고 17년이 되니 추석이라 해도 이리 덤덤해지는구나......
참 신기하다.
추석이면 바람이 달라지니 말이다.
내 살에 닿는 햇살도 다르고 공기도 더 투명하고 하늘도 한 뼘은 더 높아진 것 같다.
추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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