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들의 이야기

난 우체국 가는 것이 즐겁다.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2. 8. 31.

난 우체국 가는 것이 즐겁다.

연애하는 사람에게 편지 부치러 가는 그런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소포가 왔기에 받으러 가는 길이라 항상 설레면서 간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나 피곤하던지.....

시계를 보니 오후 5시다.

늦지 않았다.

지금 전화를 하면 우체국 봉고차가 아직 마을을 돌고 있을 시간이기에

어쩌면 다시 우리 집으로 소포를 가지고 올 수 있다.

그런데.....

하은이 너무 졸려 그냥 엄마가 기다렸다가 우체국 가서 가져오란다.

우 씨~~~~ 가시나~~~~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회의 중이란다.

에휴~~~~~

그러는 사이 5시 45분이 지나가고.

결국 하은이를 깨워서 전화를 하니 벌써 우체국에 소포를 가져다 놨다고.....

어쩔 수 없다.

어느 날은 우체국으로 달려가면 아직 차가 마을을 돌고 있다며

전화를 하고는 빨리 집에 가서 기다리라 한다.

서둘러 집 앞에 가면 우체국 초록색 봉고차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곤 했다.

그럼 무거운 상자 들고 낑낑거리며 차까지 안 가도 되니 어찌나 감사하던지.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우체국으로 갔다.

투덜투덜거리면서.

일찍 좀 전화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집으로 가져다 줄텐데..... 하면서.

우체국에 들어가서 아무 생각 없이 번호표 뽑고 돌아서다가....

깜짝 놀랐다.

어라~~~~?

우체국 맞아?

어리둥절해서 돌아보니 마치 슈퍼에 온 듯.

별게 다 있다.

우체국이 힘드나? 그래서 물건도 팔기로 했나?

사탕에 초콜릿, 학용품까지.

 

한쪽 코너에는 책과 DVD도 있다. 옆에는 가격표까지.

 

옆으로 돌어서니 주방용품도? 가만히 보니 진짜 주방용품이다. 요리책들도.

어라? 과자만이 아니라 국수 종류도 있다.

정말 슈퍼네. 크리넥스, 선물가방, 껌, 캔디.....

 

기념우표도 저리 전시를 했다.

중학교 때 한동안 기념우표를 사서 모으고는 했었다.

동명여중을 다닐 때 거의 없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육영수 여사 서거 우표도 사고,

각 나라 대통령 방문 기념우표도 사고.

참 이쁘다. 우표들이.

그리고 화려하다.

 

엄마 따라 우체국에 온 꼬마들 눈길을 사로잡을 초콜릿들.

 

예전에도 잡지책과 신문이 있기는 했지만 저리 많지는 않았는데.

정말 이젠 장사를 하려나 보다.

내 순서가 되고  소포를 가지러 친절한 아저씨가 나갔다.

소포를 보내고 받는 이 창구에 있는 아저씨는 참 친절하다.

음~~~

맘에 들어.

항상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등치 큰 헝가리 아줌마가

아니라서 맘이 놓이고.

그런데 내 옆에 DVD가 있다.

아이들용도 많고.

누가 살까?

충동구매를 할까 싶진 않지만.

아무래도 엄마 따라온 꼬마들을 노린 것이 분명하다.

 

많이 무겁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스를 전해주며 불안한지 계속 보시는 아저씨.

아니 젊은 우체국 아저씨.

헝가리 우체국 테이프가 둘려 있는 것을 보니 열어 봤다.

세관에서 무작위로 뽑아서 열어 보는데 어느 날은 그냥 온전하게 오고

어느날은 저리 열어 본 뒤에 헝가리 우체국 테이프를 둘러서 보내온다.

그럼 좀 찜찜.

예전에는 깻잎 깡통을 열어 보고는 그냥 그대로 던져 넣고, 한국 커피도 다 뜯어서는 그냥

쏟아부어서는 내용물들이 다 엉겨 붙어 울면서 씻은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손댄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와서 참 좋다.

 

참기름, 들기름, 하은이 티눈 연고, 이것저것 챙겨 넣으시면서 혹시나 싶었는지

새 수건이 20여 장이나 여기저기 사이에 들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건이 낡아서 걸레로 강등시켜야 할까 보다.... 했는데

이참에 사용하던 수건들은 걸레로 내려가고 새 수건을 꺼내야겠다.

생강차인가?

뭘 보낸 거야?

뚜껑을 열자 익숙한 냄새.

인삼을 꿀에 담아서 보낸 거구나.

신랑은 인삼 안 좋아하는데....

내가 먹어야겠다.

정말 한 해가 다르네.

개학하고 매일 침대에 허리 닿으면 그냥 죽음처럼 까라진다.

눈꺼풀도 안 떠지고 어쩌다 신랑이 늦게 들어와도

미안..... 몸이 천근만근.

저 인삼 먹으면 좀 나으려나?

그나저나 엄마나 드시지 뭐하러 보내.

아까워서 어찌 먹나.

한동안 냄새 맡고 구경만 하지 싶다.

노인네..... 본인이나 드시지.

뭐하러 이 멀리까지 보내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