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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미안해요.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2. 9. 3.

주일 예배를 마치고 부다페스트 바로 옆 UROM으로 출발을 했다.

하은이의 대부, 대모가 되는 슈라니뻐뻐와 유디뜨머머가 있는 곳으로.

항상 만나러 갈때는 김밥, 잡채, 불고기 등을 해가지고 갔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없었다.

어제도(토요일) 밤 12시를 넘겨 오후3시부터 서있었던 뻣뻣한 다리 두드리며 눕고

새벽에 일어났기에 아무 정신이 없었다.

그냥 구운김과 인삼, 그리고 말린 과일을 들고 갔다.

가면서 만두라도 냉동만두라도 준비할걸... 그랬나.... 싶고.

향이 진한 릴리옴한다발 준비해서 하은이 손에 들리고.

 

우리가 가자 마리와기저가 제일 먼저 달려와 짖어 댄다. 그러자 옆집 개까지.

조용한 위롬 동네가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마리와 기저가 짖자 하은이 대모 유디뜨가 반갑게 나와서 맞아주는데

얼마나 기다렸던지 우시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해요.

뭘 그리 한다고 이래 해를 넘기고야 오는지......

 

우리가 갈 때면 항상 저리 선물을 미리 준비해 놓고

음식을 준비해서는 기다리신다.

두 딸들에게는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나에게는 회색 니트로 된 긴 원피스.

에고~~~~ 미안해라.

정말 밤을 새워서라도 뭘좀 준비할 것을......

한국음식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유디뜨.

 

유디뜨와 슈라니는 1995년 우리가 결혼할 당시

한국에서 헝가리 대사관에서 상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니 벌써 18년이 되어가나 보다.

하은이 돌잔치 때 와서는 본인들이 대부대 모가 되고 싶다 하더니

휴가로 헝가리에 왔을 때 진짜 대부대모가 되었다.

그때부터 하은이는 그 집의 딸이었다.

얼마나 이뻐하고 신경 써주시는지.

이집트에서 근무할 때도 휴가 때마다 하은이, 하빈이

준다며 이집트 전통의상에, 목걸이에, 반지에....

어쩌면 달랑 더니(다니엘) 아들 하나 두어서 더 그럴지도.

 

오늘 교회에서 비빔밥을 먹었지만 이렇게 우리를 기다리며 점심도 미루고

 

준비해 주신 정성에 우린 또 맛있게 먹었다.

다 큰 딸들이 유디뜨 머머를 도와서 음식도 나르고 정리도 하고.

덕분에 피곤이 지친 엄마는 그냥  아 있었다.

얼마쉬삐떼(사과파이종류)도 직접 만드셨는데 배가 불러 한 조각만 먹고

싸 달라 해서 가지고 왔다.

내일 아침 커피랑 식사 대신해야겠다.

 언제 적 박스야.....

하이트맥주 박스 안에는 하이트맥주 컵이 들어 있었다.

 

남편이 자꾸만 먹을 것을 주자 저리 무릎 위에 턱을 바치고 기다리는 마리.

 

포도주 창고, 화덕, 전에는 이것저것 심어져 있던 텃밭은 풀이 무성하다.

 

은행나무.

한국에서 두 그루를 들고 와서 심으셨는데 하나는 죽었단다.

그리고 한그루만 살아서 그래도 잘 자라주는데.....

은행나무는 암수가 함께 있어야 은행이 열릴 텐데......

이 먼 타국까지 와서 뿌리내리고 살려 애쓰는 것 같아 왜 이리

안쓰러운지.

그저 튼튼하게 잘 자라주면 좋겠다.

가을에 오면 노란 은행잎 주어다가 말려서 책갈피에 꽂아야겠다.

 

슈라니 서재에는 한국에서 근무를 마치고 올 때 가져온 한국 물건들이 많다.

한국 이야기를 하면 유디뜨는 너무나 아름다운 나라라며 이야기를 마칠 줄을 모른다.

설악산, 제주도, 홍도, 북한산......

헬리콥터를 이용해 홍도 관광을 하고 회를 먹고 소주를 마셨던 이야기들.

그렇게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유디뜨는 변호사다.

그런데 의외로 박사학위는 라틴이란다.

 

어렸을 적 유디뜨와 21살의 유디뜨.

 

슈라니 뻐뻐의 아코디언.

생일 때나 크리스마스 파티 때  연주하곤 했었는데 이젠 기운이 없어서......

어딘가 비디오가 있을 텐데.... 찾아봐야겠다.

 

 

 

캐나다에 있는 더니 사진.

이젠 캐나다에서 직장도 잡고 집도 샀기에 헝가리는 휴가로나 올 것 같다.

하기사 젊은데 캐나다가 더 좋겠지.

그래서 더 외로운 슈라니 뻐뻐와 유디뜨 머머.

 

전부 인이 낳은 아들 이스트반이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을 때

그때 함께 모였었는데.

지금은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딸도 낳았다고. 사진을 보여준다.

조금씩 멍해지는 내 상태.

이제 집에 가서 좀 누워야 하는데... 싶을 때 신랑이 가자고.

유디뜨 너무 아쉬워 하지만 다음에 겨울 되기 전에

수면 잠옷 사 가지고 그때는  김밥이랑 잡채 해서

다시 오마  여러 차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정말 흰 눈이 오기 전에 그때는 유자차를 사 가지고 가야겠다.

따뜻한 차 마시라고.

그래도 유딧은 아직까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니 다행이다.

 

돌아오는 길.

참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1995년 5월. 아니 4월이었나 보다.

결혼 전에 처음 만났으니까. 그리고 벌써 하은이가 15살이네.

그 사이 전부인 아들 이스트반도 아들 하나 딸을 두었고,

중학생이었던 더니는 대학까지 마치고 캐나다에서 직장 잡아 살고 있고.

 

하기사 나이 30에 헝가리에 와서는 이제 곧 50을 바라보니.

우리 딸들이 대학도 가고 결혼할 때도 함께 있어줘야 하니

그저 건강하시기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