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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시 외 할머님이 소천 하셨다.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3. 8. 30.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데 카톡이 왔다.

뭐지....? 언닌가....?

열어 보니 친정엄마.

시외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최서방 장례식 준비로 들어오느냐고.

어제까지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여보~~, 외할머님 돌아가셨데요.

남편도 놀라고. 어제 통화할 때까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기에.....

서둘러 아이들 도시락 싸고 한국에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도 방금 전화받고 한양대 병원으로 가시려고 준비 중이시라고.

외할머님 시신이 수동 요양원에서 한양대 병원으로 이송 중이란다.

그렇구나.....
우리도 그렇지만 어머님도 들어오지 말란다.

애들 신학기에, 아범 바쁜데....

사실 맘처럼 움직이자면 비용이 엄청나서 우린 헝가리에 남기로.
친정엄마가 저녁에 병원에 가서 인사드리고 다시 연락 주신다고.
시외 할머님은 전화를 드리면 첫마디가 항상

"복 받아라~~~ " 셨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시면서 자손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시외할머님은 2010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 뵈었더니 많이 허약해지셨고,

의식이 있다가 없다가 하셨었다.

하은이를 알아보고, 나를 알아보시고는

" 며느리~~ 며느리~~~" 하셨었는데.

 

하은이 손에 연신 뽀뽀를 하시며 쓰다듬으셨는데.

2012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거의 모든 감각을 잃으셨었다.

말씀도 못하시고....

그런데 남편 이름을 들으시더니 눈물 없는 울음만 울으셨다,

미국에서 나오신 막내 이모님께서

"엄마, 귀선이 보고 싶어?" 하고 물으시면 또 울으시고....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서 모두들 칠순, 회갑 미루고,

시어머님도 올 해는 헝가리에 오신다 하셨었는데 언제 소천하실지 몰라

모두들 움직이지 못하셨는데.

오늘 아침 주님 품에 안기셨다.

 

2010년 한국 방문 때 남편은 아이들에게 증조할아버지,

증조 할머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었다.

고조할아버지, 할머니가 북한에서 하나님을 믿으셨다고.

 

언젠가 시외 할머님은 본인 이야기를 해주셨었다.

18살에 첫아이인 시어머님을 낳을 때 너무 겁이 나고 무서웠는데

시외 할머님의 친정부모님은 교회 건축과 심방으로 너무나 바쁘셨다고.

나중에 혼자 딸을 낳고 난 뒤에 오셔서 미역국을 끓여 주셨었다고.

그렇게 8남매를 낳으시고 믿음 안에서 키우셨던 시외 할머님.

막내 이모님 낳으시고 혼자되셔서 큰사위(시아버님)가 울타리

되어주시고, 그렇게 매일매일 기도로 사셨는데,

큰 사위(시아버님)가 50 초반에 암으로 먼저 떠나시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말씀을 전하러 전국을 집회로 다니시던

40대 초반 셋째 아들 목사님이 아시아나 비행기 추락사고로 소천을 하시고.

그 아픔을 가슴에 담고는 새벽마다 하나님 전에 엎드리셨던 시외 할머님이셨다.
결혼하고 헝가리에 와 살면서 전화로 안부인사를 드리면 한결같이 첫마디가

"복 받아라~~ "하셨었다.

시외 할머님의 첫 손주가 남편이라 끔찍이도 이뻐하셨다고.

그래서 그랬는지 의식도 없으시던 그때에도 남편 이름을 말하면

눈물 없는 울음을 울으셨다.
이제 광야생활 끝내고 천국에서 쉬실 외할머님.

먼저 천국에 계신 시외 할아버님도 만나시고,

나이차 얼마 안 나지만 울타리가 되어주고 의지가 되었던 큰사위도 만나시고,

그리고 가슴에 묻고 왜 그리 일찍 데려가셨느냐고 묻지도 못했던

작은 아들 목사님도 만나시고.

무슨 대화를 먼저 하셨을까.....

편히 쉬세요.

참으로 긴 광야 생활, 하나님 손 꼭 잡고 열심히 걸으셨던 90년의 생활.

이제 천국에서 그리도 보고 싶었던 남편, 사위, 아들과 함께

하나님 찬양하시며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저희도 매일 기도하며 그리 살려 노력하겠습니다.

또 이젠 제가 딸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