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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집에 오니 좋다. 조용함이.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8. 4. 2.

힘들다.

긴 비행시간이.

갈아타고 검사받고 또 짐 풀고 싸고,

무엇보다 여권검사대 앞에서 한참을 서있어야 하는 것들이 힘들다.

나이 든 것이지.

딸들이랑 같이 다닐 때는 면세점 구경하고 싶어 하니 서둘렀는데

하겸이랑 다닐 때는 구경할 일이 비행기 외에는 없으니

한가롭다.

누나한테 안겨있는 울 아들.

작은 녀석 두고 오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를 않네.

잘할 거라는 거 분명히 아는데.

그런데도 어째 자꾸만 눈물이 난다.

아직 어려보이는 딸이라서 그런지.

그냥 유럽에 데리고 있을 걸 그랬나...

친구도 생기고 수업도 잘 따라가는 것 같은데도 그냥 아프다.

속이.

헬싱키에서 항상 까다롭게 검사를 하니

짐 검사, 여권 검사 끝나고 나오면 진이 빠진다.

울 아들 왜 자기가 목이 탄다나....

부다페스트에 오니 비가 주룩주룩.

그래서 좋다.

부다페스트 다워서.

집에 온 느낌이 화~~~ㄱ 느껴져서.

집에 왔구나.

이제 비행은 힘들다.

너무 길다.

시간이.

 

따뜻한 온천물에 목욕을 시켰건만

울 아들은 새벽 3시 30분 경이면 어김없이 깨서는 놀잔다.

엄마, 왜 안 일어나는 거야?

밤이니까.

깜깜해?

응. 지금 새벽이야

일주일은 이리 놀아야 할 듯.

덕분에 새벽부터 빨래 돌리고,

청소기에 바닥청소까지 다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부엌 정리도 하고....

엄마, 석현이 형아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좋겠다.

멀어서 안돼.

멀어?

응.

이제 울 아들도 다시 적응해야지.

조용하고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헝가리 시간에.

그리고 한국 가서 떼쓰고 울던 것 고쳐야겠지.

걱정하는 엄마 생각해서 보내준 울 딸 사진.

자기 반 MT 가서 찍은 사진이란다.

헝가리 오는 데 날아온 사진.

룸메이트들하고 닭 배달시켜 먹었단다.

이제 집밥은 끝이네.

내 새끼.

아빠 오는 편에 교복 갖다 달라하더니만

만우절이라고 다들 고등학교 교복 입고들 모였단다.

이쁜 녀석.

자주 이렇게 엄마한테 연락해야 엄마가 걱정 안 하지.

새로 시작한 사업으로 만난 기분 좋은 식사 모임.

헝가리에 돌아왔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 봐야겠다.

일을.

이왕 시작했으니 잘해야겠다.

공부도 좀 하면서.

몇 년에 한 번 한국 들어가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는 친구들

나이가 들어감이 보이는데도 모이면

20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친구들.

다음에는 함께 하지 못한 두 친구도

다 같이 헝가리에서 봤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이 정도라도 건강들 할 때.

모두들 건강하고.

앞으로 또 몇 년은 지나야 볼 텐데.....

그전에 헝가리들 와서 보자.

요즘 좋은 세상이다.

21년 전 부다페스트에서 만나 함께

오페라도 가고 했던 가족을 만났다.

너무 반갑고 또 신기하고 그립고...

뭐라 표현이 다 안된다.

집에 오자마자 앨범을 펼쳤더니 있네. 있다.

그 옛날 21년전 사진이.

저랬구나.... 우리 하은이랑 남편이랑 내가.

그리고 지난 시간 후후 불어 이야기할 때면

말하곤 하던 수연이 가족.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고 눈물이 났다.

그 시간만큼 똑같은 우리가 신기해서.

그런데 두 분 색을 맞췄었나? 넥타이랑? 

하은이가 빠진 두 가족사진을 찍었다.

울 아들이 큰 누나 대신 함께.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반가움에.

나중에 웨이터가 문 닫아야 한다 해서 정리를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빈이에게 말했다.

하빈아. 엄마는 수연이 언니가 너무 이쁘고 멋지다.

저 자신감과 당당함이 멋지다.

여유로움이 멋지다.

우리 딸도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고

너그러운 멋진 사람이 되자.

여자니 여성이니 보다 멋진 사람.

헝가리로 돌아와서는 하은이에게

수연 어머니가 주신 선물을 전해주면서

또 이야기했다.

수연이 멋지더라고, 자신감과 당당함이 아름다웠다고.

 

잘 살아야지.

언제 어디서 이런 귀한 만남이 또 있을지 모르기에.

잘 살아야지.

거짓되지 않게 성실하게.

자잘한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해서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려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나  크리스천이라 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치고 또 질려가는 이때.

너무나 감사했다.

그때 울 신랑이, 내가,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하신 분들이.....

그 인연들이 너무 귀해서 감사했다.

잘 살자.

앞으로 허락된 시간도.

그래서 또 10년 후, 20년 후

누군가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반갑고

고맙게 그렇게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