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긴 비행시간이.
갈아타고 검사받고 또 짐 풀고 싸고,
무엇보다 여권검사대 앞에서 한참을 서있어야 하는 것들이 힘들다.
나이 든 것이지.
딸들이랑 같이 다닐 때는 면세점 구경하고 싶어 하니 서둘렀는데
하겸이랑 다닐 때는 구경할 일이 비행기 외에는 없으니
한가롭다.
누나한테 안겨있는 울 아들.
작은 녀석 두고 오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를 않네.
잘할 거라는 거 분명히 아는데.
그런데도 어째 자꾸만 눈물이 난다.
아직 어려보이는 딸이라서 그런지.
그냥 유럽에 데리고 있을 걸 그랬나...
친구도 생기고 수업도 잘 따라가는 것 같은데도 그냥 아프다.
속이.
헬싱키에서 항상 까다롭게 검사를 하니
짐 검사, 여권 검사 끝나고 나오면 진이 빠진다.
울 아들 왜 자기가 목이 탄다나....
부다페스트에 오니 비가 주룩주룩.
그래서 좋다.
부다페스트 다워서.
집에 온 느낌이 화~~~ㄱ 느껴져서.
집에 왔구나.
이제 비행은 힘들다.
너무 길다.
시간이.
따뜻한 온천물에 목욕을 시켰건만
울 아들은 새벽 3시 30분 경이면 어김없이 깨서는 놀잔다.
엄마, 왜 안 일어나는 거야?
밤이니까.
깜깜해?
응. 지금 새벽이야
일주일은 이리 놀아야 할 듯.
덕분에 새벽부터 빨래 돌리고,
청소기에 바닥청소까지 다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부엌 정리도 하고....
엄마, 석현이 형아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좋겠다.
멀어서 안돼.
멀어?
응.
이제 울 아들도 다시 적응해야지.
조용하고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헝가리 시간에.
그리고 한국 가서 떼쓰고 울던 것 고쳐야겠지.
걱정하는 엄마 생각해서 보내준 울 딸 사진.
자기 반 MT 가서 찍은 사진이란다.
헝가리 오는 데 날아온 사진.
룸메이트들하고 닭 배달시켜 먹었단다.
이제 집밥은 끝이네.
내 새끼.
아빠 오는 편에 교복 갖다 달라하더니만
만우절이라고 다들 고등학교 교복 입고들 모였단다.
이쁜 녀석.
자주 이렇게 엄마한테 연락해야 엄마가 걱정 안 하지.
새로 시작한 사업으로 만난 기분 좋은 식사 모임.
헝가리에 돌아왔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 봐야겠다.
일을.
이왕 시작했으니 잘해야겠다.
공부도 좀 하면서.
몇 년에 한 번 한국 들어가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는 친구들
나이가 들어감이 보이는데도 모이면
20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친구들.
다음에는 함께 하지 못한 두 친구도
다 같이 헝가리에서 봤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이 정도라도 건강들 할 때.
모두들 건강하고.
앞으로 또 몇 년은 지나야 볼 텐데.....
그전에 헝가리들 와서 보자.
요즘 좋은 세상이다.
21년 전 부다페스트에서 만나 함께
오페라도 가고 했던 가족을 만났다.
너무 반갑고 또 신기하고 그립고...
뭐라 표현이 다 안된다.
집에 오자마자 앨범을 펼쳤더니 있네. 있다.
그 옛날 21년전 사진이.
저랬구나.... 우리 하은이랑 남편이랑 내가.
그리고 지난 시간 후후 불어 이야기할 때면
말하곤 하던 수연이 가족.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고 눈물이 났다.
그 시간만큼 똑같은 우리가 신기해서.
그런데 두 분 색을 맞췄었나? 넥타이랑?
하은이가 빠진 두 가족사진을 찍었다.
울 아들이 큰 누나 대신 함께.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반가움에.
나중에 웨이터가 문 닫아야 한다 해서 정리를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빈이에게 말했다.
하빈아. 엄마는 수연이 언니가 너무 이쁘고 멋지다.
저 자신감과 당당함이 멋지다.
여유로움이 멋지다.
우리 딸도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고
너그러운 멋진 사람이 되자.
여자니 여성이니 보다 멋진 사람.
헝가리로 돌아와서는 하은이에게
수연 어머니가 주신 선물을 전해주면서
또 이야기했다.
수연이 멋지더라고, 자신감과 당당함이 아름다웠다고.
잘 살아야지.
언제 어디서 이런 귀한 만남이 또 있을지 모르기에.
잘 살아야지.
거짓되지 않게 성실하게.
자잘한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해서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려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나 크리스천이라 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치고 또 질려가는 이때.
너무나 감사했다.
그때 울 신랑이, 내가, 그리고 우리 집을 방문하신 분들이.....
그 인연들이 너무 귀해서 감사했다.
잘 살자.
앞으로 허락된 시간도.
그래서 또 10년 후, 20년 후
누군가를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반갑고
고맙게 그렇게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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