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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면서(하은엄마)

만들기 재료들을 정리했다.

by 헝가리 하은이네 2020. 10. 11.

이사 갈 준비를 정말로 이젠 해야 한다.

남편이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들만 싸서 새 집으로 가면 된단다.

필요하지 않거나 갖고 가고 싶지 않은 것은 지금 이 집에 놔두고 그냥 가면

본인이 알아서 다 정리한다면서.

그러자 아주 심플해지면서 이사가 편해졌다.

가져갈 것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이랑 가구도 이 번에 새로 다 구입했다.

식기 세척기도, 전자레인지도, 세탁기,  소파, 침대... 다 새로 구입을 하기 때문에

생각해 보니 지금 입는 옷들이랑 제일 많은 짐이 하겸이 장난감이지 싶다.

그리고 작은 샵을 하고 싶어서 구입해 놓은 앤틱 그릇들이 아래에 박스채로 쌓여 있다.

그건 그대로 들고 가면 되고.

200여년된 앤틱 피아노는 어떻게 하나.... 모양이 너무 예뻐서 안 팔고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지하에 있는 공간에 옮겨 놔야겠다.

헝가리에 처음 왔을 때 벌러톤 까지 가서 싣고 온 앤틱 피아노는 모양이 너무 예뻐서 

25년째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사를 하려고 하니 고민이 된다, 버려야 하나... 가지고 있을 까....

 

그리고,

어제 하루 종일, 아니 밤늦게 까지 색종이들이랑 만들기 재료들을 정리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너무너무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이 친정언니가 한국에서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비행기로 보내 준 것들이다

정리하면서 어찌나 미안하고 고맙던지...

GGIS에서 근무할 때 방과 후 클럽을 했었다. 색종이 접기.

내가 너무 재밌고 좋아서 시작해서 3년을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에 아이들에게 색종이 접기를 했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딸들에게 엄마가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했고,

정말 열심히 했었다.

학교에서 시간 외 수당을 준 것도 아니고 재료비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좋아서 언니한테 부탁을 하고

(헝가리에는 그때만 해도 색종이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일본 오리가미

종이를 살 수는 있는데 엄청 비싸다.) 

아는 선생님께 만드는 방법을 부탁하면 우편으로 보내주셨었다.

지금처럼 유튜브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하나하나 집에서 책을 보거나,

내가 유치원 교사였을 때 

만들었던 것들을 다시 연습하고,

선생님이 보내 주신 방법을 따라 계속 연습하면서 가르쳤었다.

 

참 즐겁고 좋은 시간이었는데....

그런데 언니한테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나 많이 보내 주었는데 이걸 사러 남대문 시장까지 가고 우편으로 보내고....

그런데 난 그냥 앉아서 받았으니 말이다. 수고와 비용은 다 언니랑 엄마가 한 거였는데.

 

그러다 갑자기 내 입에서 "내가 미친년이지"  툭 튀어나왔다. ㅎㅎㅎㅎ

생각해 보니 누가 나보고 하란 것도 아닌데 딸들 기다리게 하면서(3시에 끝나지만 엄마가

색종이 접기 가르치는 날은 5시 넘어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 돈 들여서 (3년째는 학교에서 재료비 청구

하라 해서 했는데 재료비 일부만 영수증 처리해서 드렸는데 2달 정도 걸려서 받았다.

그래서 다시 청구하지 않았다. ) 3년을 했으니 말이다. 

 

세상에~~~

8개의 서랍을 다 쏟아 놓으니 정말 많다.

만들기 자료들도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다 버린 줄 알았는데 ,

하겸이 선생님 선물 드릴 때 사용해야겠다.

아기 신발 접을 종이도 이렇게 잘라 놓았었네. 

 

정말 이렇게 많은데...

다시 이것들로 만들 날이 있으려나.

하겸이 친구들 오면 색종이로 만들고 놀라고 줘야겠다.

 

예전 사진을 찾아보니 참... 새삼스럽다.

이런 열정이 있었는데. ㅎㅎㅎㅎ

이건 울 아들하고 만들어 봐야겠다.

색종이 접기의 2/3가 여자 아이들이라서 인형 접는 것을 엄청 좋아하고 몇 개씩 만드느라

인형 만드는 날은 5시가 넘을 때까지 만들었고

미술실 정리하고 내려가면 그때까지 기다린 엄마들 앞에서 

아이들은 만든 인형을 자랑하곤 했었다.

상자는 종류별로 다 접었었다. 우산도 모든 종류의 우산을 다 접고.

제일 어려워하면서도 끝까지 계속해서 만들고 또 만들고 싶어 한 미니 책.

책을 만들어서는 안에 비밀 내용을 적는 아이들이 너무 예뻤었다.

난 애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던 우산이랑 장화.

아기 신발을 접더니 집에 가서 큰 신발을 만들어 신어 봤다는 아이들.

저 신발들을 20여 명의 아이들이 만들게 하기 위해서 밤 10시 넘도록 종이에 자로 재서 선을 그리고

칼로 자르고 작은 종이를 또 오리고, 리본을 묶고...... 늦은 밤까지 했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에 그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남자아이들을 위해서 준비한 공룡들. 8가지 공룡을 2주에 걸쳐서 만들었었다.

군인이랑 탱크, 로켓, 동물들은 남자아이들을 위해서. 

울 아들이랑 만들어야겠네.

편지함은 한국에서 언니가 패키지를 사서 보내주어서

덕분에 아이들이 엄청 행복해하며 만들었었다.

저 편지함 만들 재료가 아직 몇 개 남았다.

이사하고 시간이 되면 하겸이랑 만들어 봐야겠다.

 

집시 아이들하고는 아주 쉬운 것만 해도 아이들이 엄청 힘들어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색종이 접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 확실히 한국 아이들이랑 일본 아이들이 잘하더라는 것이다.

헝가리, 미국 등 서양 아이들은 손가락 힘이 생각보다 약하고 세심하게 접는 것을 힘들어했다.

 

3년을 아이들 가르치며 사용하고, 문화원에서도 사용하고,

집시 교회에서도 계속 사용하는데도 저렇게나 남았네.

저 많은 재료들 우리 아들 친구들 오면 해봐야지.

 

저 때의 저런 열정이 지금은 없다.

내 시간, 내 돈 들여, 아니 한국의 친정언니, 친정엄마, 선생님 도움까지 받아가며 할 열정이

이젠 없다

그래서 저 때의 내가 바보스러우면서도 예쁘다. 내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