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들의 이야기/하겸이 이야기

슈퍼 히어로의 날에 슈퍼 히어로가 된 하겸이

by 헝가리 하은이네 2021. 2. 17.

월요일 오후에 학교 끝나고 엄마 얼굴 보자마자

"내일은 슈퍼 히어로 옷 입고 학교에 와야 한대"

신나서 말하는 아들.

그런데 메일이 없었는데.....

오후 5시가 넘어서 메일 하나가 띵동~~~

카니발을 하는데 하겸이 학년은 슈퍼 히어로로 하기로 했단다.

단 코로나 때문에 퍼레이드는 생략하고 교실에서 간단하게.

저녁부터 옷 챙기고 장갑, 가면 챙기면서 엄청 신이 난 우리 하겸이.

옷은 캡틴 아메리카인데 장갑은 블랙 펜서랑 스파이더 맨. 

학교 주차장에서 친구들은 뭘 입고 왔나 보니

역시나 여자아이들은 공주님, 남자아이들은 스파이더맨, 마법사...

사진이 없다. 

건물 안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게다가 올 해는 퍼레이드를 못해서.

 

지난주 금요일,

하겸이를 데리러 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나를 기다렸다가 말씀을 하신다.

1학기가 다 지나고 이제 2학기인데 우리 하겸이가 거의 말을 하지 않아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단다.

플로리앙 수업에 하겸이가 스스로 말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목요일 수업을 받지 못하게 했단다.

그랬구나....

이상했었다.

목요일 밤에 자려고 하겸이를 안고 누웠는데 울었다.

소리도 안 내고 엄청 서럽게 울고 또 울고.

그리고 말을 하고 싶은데 소리가 잘 안나 온다고 한다.

그래서 하빈이 누나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하겸아, 하빈이 누나도 선택적 함구증이었거든,

하빈이 누나가 5살 때, 두 살 많은 형아가

하빈이 누나가 오빠라고 안 부르고 야 라고 불렀다고 정말  많이 때려서

그때부터 한국 사람들 앞에서는 한국말을 무서워서 못하고

소리도 잘 안 나오고 그랬는데 어느 날

하빈이 누나가 용기를 냈어, 6학년 때,

긴 시간 영어도 말하고 헝가리 말도 잘하고 그런데 한국말만 못 했었어.

밖에서 사람들 앞에서는.

집에서는 하겸이 처럼 진짜 말을 잘했는데.

그러다가 6학년 때 하빈이 누나가 결심을 한 거지.

그리고 용기를 내서 소리를 내서 먼저 인사하고,

누가 물어보면 소리를 내서 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러더니

지금은 한국에서 대학 공부를 하잖아.

처음이 힘들어, 손에 땀도 나고 가슴도 막 뛰고,

그런데 딱! 3번만 하면 말이 생각보다 쉽게 술술술 나오거든.

우리 하겸이는 하나님 아들이고 최 귀선 아빠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야.

무서워하지도 말고 긴장하지도 말고 큰 소리로 봉주르~~~ 인사하면 되고,

혹시 하겸이가 프랑스말을 틀려도 절대로 어느 누구도 야단치지 않아.

다 귀엽다고 하고

하겸이가 소리를 내서 말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프랭크 선생님이랑 플로리앙 선생님이 행복해하지.

아마 깜짝 놀랄 거야. "

그렇게 밤에 기도하고 아침에 학교에 보냈었는데,

금요일 오후에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니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전 날 밤에 하겸이가 운 이유를.

그리고

플로리앙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내고,

그럴 경우 먼저 부모인 우리에게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겸이가 밤에 우는 이유를 몰랐었다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싶다고 써 보냈었다.

토요일 한국 친구들이랑 한국 말로 신나게 놀고,

주일은 집시 교회에 가서 헝가리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예배 드리고,

 

월요일 아침,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프랑스말 거의 다 알아듣고 프랑스 책도 읽는 우리 하겸이가

말을 안 한다고 하니.

사실 난 몰랐었다.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하는 줄 알았었다.

"하겸아, 오늘 학교에서 프랭크랑 플로리앙이랑 말도 하고

친구들하고도 말을 하려고 노력하기로

엄마랑 약속을 하자. 힘들면 조금 기다렸다가 해도 되지만 한번 해봐.

하빈이 누나도 결심을 하고 소리를 냈는데 3번 하니까

술술술 진짜 잘했거든. 3번만 노력해 보자"

"응, 알았어"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하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고 들어가는 우리 아들.

문 앞에서 열을 재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 "봉주르~~~"

인사하는 우리 아들 목소리가 내 귀에도 들린다.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그리고 태산이 산책시키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혼자 머리속으로만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하고

말은 입 안에서 맴돌고,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 까 생각이 들면서 눈물만 나고.

그런데 에미는 매일 재밌다고 하며 학교에 가는 아들이 정말

매일 재밌었나 보다 그리 생각을 했으니....

계속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 아들 평안하게 지켜주시고 긴장하지 말고 대담하게

소리를 내서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만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월요일 오전을 보내고

하겸이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 때

메일 한 통이 왔다.

혹시나.... 하고 보니 플로리앙 선생님이 보내셨다.

이 메일을 받고 너무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고

바로 남편이랑 딸들에게 보내고.(딸들에게 기도하라고 했었기에)

오후에 우리 아들 엄마 얼굴 보고 나오는데 표정이 환하다.

그러면서 "내일은 슈퍼 히어로 옷을 입고 와야 한대" 신나서 말을 하고,

"하겸아, 플로리앙 선생님이 엄마한테 메일을 보내왔는데

하겸이가 플로리앙 수업시간에

대답도 잘하고 프랑스 말도 하고 친구들도 도와줬다며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고 보내왔어."

"엄마, 내가 3번을 연습하고 소리를 냈더니 말이 잘 나오더라,

진짜 3번 하고 나니까 말이 계속 나왔어." 

하는 어린 내 새끼.

너무너무 기특하고 감사하고.

오후에 온 아빠는 하겸이 꼭 안아 주시고.

화요일,

슈퍼 히어로 날에도 친구들하고 프랑스어로 많이 말을 했단다.

"엄마, 나한테 헝가리 말로 하는 친구한테는 헝가리 말로 대답을 하고

프랑스 말로 하는 친구한테는 프랑스 말로 했어"

이제 드디어 말문이 트이나 보다. 우리 아들이.

감사합니다~~ 소리가 하루 종일 나온다. 감사해서.

 

우리 하겸이가 만든 베트맨 자동차다.

어쩜 저리 뚝딱뚝딱 잘도 만드는지.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