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은 시간,
메일이 왔다. 하겸이 학교에서.
내일부터 우크라이나에서 온 학생 15명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예정이란다.
그 학생들은 우크라이나의 프랑스 학교 학생들인데 전쟁으로
헝가리로 가족들과 함께 왔고 내일부터 당분간 프랑스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것이며, 그 가족들이 헝가리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하고
학교와 가족들이 반갑게 맞아주기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유고 내전이 났을 때 헝가리에 있는 난민촌을 방문했었다. 1997년에.
유고슬라비아에서 대학 수학교수였다는 분은 난민촌의 2층 침대 중 아래층
자기 침대에 유고의 자기 집 사진을 붙여 놓고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2층 집에 넓은 수영장이 있는 아주 좋은 집이었다.
그 옆의 침대에 계신 분은 변호사였는데 그때 캐나다에 이민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면서 변호사였지만 난민 신분으로 헝가리에 머물면서
도로 공사하는 곳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난민으로 헝가리에 머물면서 일용직이나
베이비시터로 일하면서 이민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들 있었다.
그때 난민숙소를 보고 충격을 받았고,
긴 내전동안 어디든 받아줄 나라를 찾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보았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난민은 좀 다르다. 그때와는.
특히 헝가리의 경우 헝가리로 오는 난민들 중에는 우크라이나 국적이지만
헝가리 민족들이 많고, 헝가리에 친척들이 있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놀랜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이나 학업으로
머물렀던 외국인들이다.
특히 흑인들과 인도인들, 우크라이나 국민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머물렀던
외국인들이 헝가리로 많이 들어왔다.
갑자기 부다페스트 시내에 흑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여기적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하겸이 치과에 가느라고 호텔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호텔 로비에 흑인들만 가득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부다페스트 호텔이 꽉 찼단다.
우크라이나에서 들어온 우크라이나 국적이 아닌 외국인들과
여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로.
인도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서부역에 우크라이나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을 하면 기다리고 있던
국제기구나 자원 봉사자들, 정부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질서 있게 안내를 하고,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숙소를 배정한다.
큰 딸 학교에서 온 메일을 나에게 보내왔는데,
필요한 물품 목록과 어디로 가지고 가야 하는지가 자세히 나와있고,
역시나 발 빠른 외국 학생들 택시 타고들 한가득 준비해서들
벌써 갔다 왔단다.
반려동물들을 데리고 나온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도움 요청이 눈에 띈다.
난민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데리고 온 반려동물들을 잠시 맡아 줄 곳을 찾고 있었다.
큰 딸이 물어보는데....
우린 태산이가 질투하고 스트레스받을까 싶어 안될 것 같다 했다.
큰 딸이 하겸이랑 같이 난민 숙소에 물품 준비해서 갈 건지 물어 보는데,
예전 유고 난민이나 알바니아 난민, 그리고 최근의 시리아 난민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이들 옷이랑 필요하다 하는 약들 챙겨서 가보고 싶긴 하지만
좀 지켜보자 했다.
조심스러워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보다가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똑같겠지... 싶다.
제일 먼저 외국인들이 떠날 것이다.
물론 그들도 본인들의 사업, 가게, 삶의 터전을 고스란히 포기하고
나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바로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부다페스트 호텔에 머물면서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돈 많은 사람들이다.
고급 호텔에 머문다.
돈 많은데 난민 숙소로 간다는 것도 그렇지 싶긴 하다.
어쨌든 부다페스트 시내를 다니다 보면 달라진 게 피부로 느껴진다.
무리 지어서 돌아다니는 흑인들이 많고,
인도인들이 눈에 띄고, 관광객은 아닌데 거리를 배회하듯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큰 딸 집에 데려다주러 가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온 차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차로 왔구나..... 운전하고....
우크라이나랑 국경을 접하고 있는 헝가리라서......
유럽은 이렇게 차로 이동할 수 있고, 기차로 나올 수 있는데
만약 그러면 절대 안 되지만 우리나라는 어쩌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한국 가는 비행 편이 많이 취소되었다.
제발 빨리 좀 끝나면 좋겠다. 전쟁이.
그래서 다시 그들의 일터로, 집으로, 사업장으로 돌아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만그만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유럽의 많은 나라로 흩어져 난민으로(우크라이나 국적), 나그네로(외국인으로
우크라이나에 머물다 급히 나온 외국인들) 가슴 졸이며 머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대부분 반려동물들을 데리고 왔겠지만 혹시나 남겨 두고 왔다면
또 얼마나 걱정이 되려나 싶고, 얼마나 주인을 기다릴 까 싶기도 하고.
내일 우리 아들 학교에 우크라이나의 프랑스 학교에 다니다 전쟁이 나서
헝가리로 잠시 피난 온 학생 15명이 와서 부다페스트에 머무는 동안
함께 수업을 받게 된단다.
혹시 우리 아들 반에도 새 친구 오려나?
내일 수영장에 도우미로 가는데 눈여겨봐야겠다.
학교에서 온 메일 처럼 헝가리에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지내다가
돌아가면 좋겠다. 그러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헝가리에서의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우리들의 이야기 > 우리 가족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향 바꿔서 까마귀 식당으로 (VakVarju Etterem) (0) | 2022.03.25 |
---|---|
2022년 여성의 날, 울 아들은. (0) | 2022.03.09 |
감사합니다. 드디어 책이 왔다. (0) | 2021.02.09 |
무자년 새해맞이 2 (0) | 2008.01.02 |
무자년. 새해 맞이 1 (0) | 2008.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