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심플했다.
변호사가 10시에 예약했다 하니 이민국에 가서 기다렸다가
사인 몇 번하고 사진 찍고, 그런 다음에 보더폰에 가서 아들 전화기에
칩 넣고 전화번호 받고...
아마도 그때쯤이면 12시가 좀 넘을 테고,
남편 괜찮다 하면 점심 같이 먹고 골프 연습장에 가서 아들이랑
공 한바구니씩 치고 장보고 집에 오면 대충 5시쯤 될 테고,
그러면 저녁 준비하고 그렇게 하루가 되겠지.... 했다.
이민국에 9시쯤 도착을 했다. 좀 일찍.
그런데 분명 예약은 10시였는데 우리가 차례가 되어 들어갈 때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래도 안에서는 30여분 만에 끝났다.
남편은 전기 요금내고 전기 연결하고 웨스텐드로 오기로 하고 우리는 먼저
웨스텐드로 가서 기다렸다.
보더폰에서 계속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남편이 왔을 때는 그때 번호표를 뽑으니 1시간 3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단다.
이때가 벌써 1시가 훌쩍 넘었고, 배고파 현기증이 날 지경이고.
1시간 3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아래로 내려가서 점심을 먹고,
뉴욕카페 옆에 있는 보더폰 사무실로 가자는 남편 말에 그러자 하고...
남편은 먼저 주차요금 내고 갔는데....
이때부터 내 머리가 이상해졌다.
주차요금을 내려고 기계 앞에 서서 주차증을 넣으니
1500 포린트가 나오고, 계산하려고 신용카드를 넣었다.
영수증을 기다리는데 내 뒤에 계신 헝가리 할아버지께서
가만히 나와 기계를 번갈아 보신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뭔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기다리는 영수증은 안 나오고....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뱅크까르쪄..... 뱅크까르쪄????
그런데 이미 뇌가 멈춰버린 나는 읽으면서도 현실파악이 안 되고.
왜 신용카드가 안 나오지?
하며 내가 쑤셔 넣은 신용카드를 넣는 곳을 가만히 보니....
헐~~~ 우 씨~~~
내가 미쳐 미쳐.
증말 돌아 버리겠다.
미쳐 진짜 내가 미쳐!!!!
악~~~!!!
소리 지르며 내 머리를 기계에 박고 싶은 것을 참으며
어... 어.... 이런....
하는 나를 뒤에 할아버지가 진심 진심 걱정하며 쳐다보신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한마디도 말은 안 했지만 이 상황을 다 지켜보신 할아버지 상황파악
하시고 걱정을 하신다.
"신용카드를 그럼 어떻게 빼지?"
하신다.
하~~~~ 돌아 버린다. 증말.....
현찰을 넣어야 하는 곳에 난 신용카드를 쑤셔 넣은 것이다.
왼쪽 위에 카드 계산하는 곳이 있었는데.
어째 나는 그걸 못 보고 지폐 넣는 곳에 카드를 쑤셔 넣은 것인지....
가끔 지폐를 넣으면 맘에 안 들면 다시 뱉어내던 것이 생각이 났는데
이 녀석 카드를 꼭 물고는 다시 뱉어 내지 않는다.
순간 사람을 불러서 이걸 분해해야 하나.... 누구를 부르지????
할아버지 다시 진심 함께 걱정하시며 속에 들어간 내 카드를 쳐다보며 고민하신다.
내 신용카드를 어쩐다나.....
그러다 가방에 있는 귀이개가 생각이 났다.
시도 때도 없이 귀파달라는 아들 때문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귀이개.
바로 가방 뒤져서 귀이개 찾아서 끝을 단단히 잡고 조심조심 신용카드를 옆으로 밀었다.
일단 한쪽으로 밀어서 앞쪽으로 살살 잡아당겨 보려는 계획.
할아버지도 긴장하면서 지켜보시고,
세상에.... 카드 끝이 살짝 보이고...
떨리는 진짜 손 끝이 떨렸다.
다시 밀려서 들어가 버리면 어쩌나 싶어.
떨리는 손으로 아주 조심조심 신용카드를 꺼냈다.
신용카드를 손에 쥐는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고.
할아버지 진심 진심 기뻐해 주셨다.
정말 두 팔 벌려 나를 안아 주실 것처럼. 내가 손만 조금 높이 들었다면
바로 하이파이브해 주실 자세로 진심 기뻐해 주셨다.
나도 모르게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아들 손 잡고 차로 가는데
울 아들,
"엄마, 아빠는 진짜 탁, 탁, 탁 하더니 끝났어. 엄청 빨리.
근데 엄마는 너무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어."
한다.
"알아. 엄마도 알아.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정지돼서
돈 넣는 곳에 카드를 넣어서 그래. "
정말 아들 손 잡고 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뉴욕카페 옆 보더폰 사무실에 가서 신랑한테 말을 하니
너무 어이없어 웃는 신랑.
이 마누라가 하다 하다 이젠 별짓을 다하는구나 싶은가 보다.
정말 에피소드 다 쓰려면 책 한 권 족히 나오지 싶은데.....
돌아버리겠다. 정말....
나는 이제 내가 걱정된다.
말도 안 되는 무슨 사고를 또 칠지 진심 걱정된다.
핸드폰에는 34도, 내 차에서는 40도인 날.
하루 종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사고만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초주검 돼서....
울 아들은 이 더운 날 집에 오자마자 축구를 한다.
하루 종일 엄마랑 같이 이민국에서 기다려, 보더폰에서 기다려,
주차장에서 또 기다려... 다시 보더폰에서 기다려...
결국 골프는 못하고 집에 오니 공을 찬다. 이 더위에 신나서.
웨스텐드 주차장 들어가다 신기해서 찍었는데
어째 내 머리속 같다.
오늘 많이 안 걷지 싶어 신고 나간 구두가 하루 종일 신고 있었더니
발이 아프다. 발가락이 아니라 피부가 쓸려서 벗겨지니 넘 아프다.
이젠 구두 신기도 힘들다.
양말신고 운동화 신고 걸어야 하나 보다.
내가 한 일은 없는데 너무나 피곤하고 지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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