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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하빈이 이야기

하빈이 학교 어머니 날 행사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7. 5. 12.

목요일에 작은아이 학교에서 어머니날 행사가 있었다.

헝가리에는 여자의 날이 3월에 있고 아버지의 날은 없지만

어머니의 날은 크게 행사를 한다.

 

헝가리에서 거주증을 만들 때, 운전면허증을 바꿀 때, 의료보험증을 만들 때,

그리고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친정엄마의 이름을 썼었다.

내 평생에 이렇게 많이 엄마의 이름을 써본 기억이 없다.

본인도 모를 것이다.

당신의 딸이 헝가리에서 모든 공공서류에 당신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이렇게 헝가리에서는 엄마의 이름이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우리나라에서 아버지의 존함이 얼마나 중요히 여기던가.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함을 유교적인 문화에서

교육받고 살아온 나는 헝가리땅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한 번도 적은 적이 없다.

 

언제나 엄마의 이름을 쓰고 또 쓰고.....

 

나의 딸들도 모든 서류마다 나의 이름을 이렇게 열심히 쓰게 되겠지.

이혼이 많은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에서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생긴 제도이지 싶다.

 

매년 하는 행사이고 헝가리말을 잘 못하는 에미는 크게 감동을 받지 못한다.

그저 재롱잔치 구경하듯이 내 새끼 잘하는 것이 그저 좋아서 카메라

들고 가서 열심히 찍으며 앉아 있을 뿐이다.

 

엄마에 대한 시낭송, 노래,아주 짧은 연극, 할머니에 대한 시낭송,

노래, 연극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용이 우리네 동시와 동요와 같다는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이, 하는 일이 어디나 같으니 그럴 수밖에....

 

"엄마에게 혼날 때는 할머니를 부른다.

옷이 더러워져도 할머니에게 먼저 간다.

언제나 할머니는 나를 감싸주신다......."

"엄마는 나를 보배, 천사, 귀염둥이, 장미꽃,.....

으로 부른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에게 맛있는 것과

깨끗한 옷을 입혀주신다......"

 

듣다 보면 좀 민망해진다.

화도 내고 감정 섞어 야단도 치는데 이런 감사와 칭찬을 들으니 오히려

반성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들과 할머니들이 반성하느라 우시나?

여기저기서 콧물을 핑핑 거리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신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아이들이 작은 화분과 자기들이 만든 메모지를

엄마에게 선물로 전달하고 뽀뽀하며 마무리한다.

처음으로 남편에게 배워서 동영상을 찍었다.

언제나 아이 학교에는 나 혼자 가기에 사진 찍으랴 비디오 녹화하랴

정신없어 항상 두 가지다 만족하질 못해서 아예 사진만 찍었는데

드디어 디카로 동영상을 찍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

그런데 이런~~~~~

너무 길게 찍어서 올릴 수가 없다.

아!!!!!

너무 아쉽다.

작년에 이어 작은 아이가 바이올린 연주를 했는데 올 해는

작년 보다 정말 잘했는데....

 

동영상 찍느라 사진도 포기했는데....

키가 두 번째로 작은 우리 딸은 균형을 잡기 위해 한가운데에 서서는

너무 근엄한 표정으로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임무(?)를 다했다.

어휴, 가시나, 좀 웃을 것이지.

아마도 사진 보면 후회할 것이다.

 

쌍둥이가 엄마에게 꽃을 갖다 주는 시간에 우두커니 서서는 울고 있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빠는 다른 여자랑 살고 엄마는 작년에 낳은

막내만 데리고 집을 나갔단다.

그래서 할머니랑 사는데 오늘도 할머니가 오셔서는

쌍둥이 손녀를 안고는 같이 우신다.

마음이 아프다.

아직 2학년인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가들인데......

 

한나는 올 해는 엄마와 할머니 3분이 오셨단다.

외할머니, 친할머니, 아빠가 새로 결혼해서 생긴 새 외할머니

이렇게 3분이 오셔서 한나 엄마와 함께 앉아 계신다.

우리로써는  학교에서 보기 힘든 상황이지 싶다.

그래도 울고 있는  쌍둥이보다는 할머니 3분이 낫지 싶다.

 

이젠 헝가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고 하니....

한숨만 나온다.

 

집에 온 작은 아이가 한글학교 일기를 쓰는데 "난 엄마가 있어서 좋단다."

 

내년에는 우는 아가가 없었으면 좋겠다.

울음이 너무 애처로워 보는 이의 마음이 너무나 아린다.

주름진 할머니의 눈물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자식보다 손주가 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데 그 손녀가 울고 있으니.....

 

그저 예전처럼 명랑하고 좀 지나쳐도 좋으니 활발하게 씩씩하게 컸으면 좋겠다.

그러길 동양 아줌마는 소망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