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힘들다.
화나고,
슬프고,
분노하고,
실망하고......
인간의 나약함과 비겁함.
그리고 적당한 타협에 혐오감이 든다.
작은 이익이나 자신의 명예(사실 별것도 아닌) 때문에 회피하거나 두둔하는 것들이,
그러므로 인해서 한시적인 삶의 우리 이름은 밟히지 않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분노한다.
인간들은 착각한다.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이것이 모두에게 최선이었다고.
하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이기주의에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다.
자신에게 더러운 물 한 방울도 튀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진흙탕 속에 처박히는 것은 외면한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타협을 하는가.
그러나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다른 것은 다 타협을 해도 선과 악은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절대로 어느 선에서 서로서로 좋은 방향으로 절충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황희 정승이라도 된 듯 착각을 한다.
윤리나 인간관계, 도덕적인 면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
하지만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선은 취하되 악은 그림자라도 멀리하라 했는데 우리들은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타협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 속에 없다.
오로지 내 가족에 대한 사랑만 있을 뿐 진정으로 흘러가야 하는 사랑은
메마른 지 오래다.
그저 사회생활에서 습득한 사랑의 흉내일 뿐.
그래서 이용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다.
이렇게 저렇게 때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내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이다.
제일 만이 이용당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명분일 것이다.
그 속에서 선한 자들을 이용하는 악이 자라 하늘을 덮어도 잘라내지 못한다.
아무도 그 역할을 원하지 않기에.....
그리고,
난 아직 피해를 보지 않았기에,
사람 좋은 웃음과 예의 바른 몸짓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인양 살아간다.
그러나 햇빛만 비춘다면 사막이 되듯 눈물 없는 사랑의 흉내는 얼마 안 가
나를, 공동체를 사막으로 만들어 모래바람만 불게 될 게다.
책망이 살아있고 그 책망으로 인한 아픔으로 울어야 하는 곳에서 초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나약하고 타협하므로 인해서 책망이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씩 모래바람에 눈이 아프고 피부가 거칠어져 초원을 찾아
떠나는 자들이 생긴다.
정의가 고프고 공의가 목말라서.....
난 감동을 받고 싶다.
감동을 보고 싶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기 위하여 고민하며 애쓰는 분들을 보면서
받는 감동을.....
좋은 차를 타고 있는 담임 목사님께 새 차가 나왔다고 중형차를 다시 사드리면서도
시골이나 섬 교회의 가난한 목회자의 호소는 외면한다.
담임목사님께 잘해야 복을 받는 다고 믿고 있으니까.
눈물 몇 방울의 선교 보고에 많은 순진한 성도들이 주머니를 턴다.
그러나 그 현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선교사가 진짜인지 확인도 안 한다.
왜냐하면 기름 부은 종을 의심하면 벌을 받는 다고 믿으니까.
그리고 이용당한다.
그 결과 정말 신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선교사님들이 피해를 본다.
자신들이 믿음 좋은 자들처럼 흉내 내다가 사기당해 놓고는 엉뚱한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선교사들이 마른하늘에 날 벼락처럼 피해를 보고는 힘들어한다.
그들은 이미 많은 선교비를 받은 후에 다른 밥상으로 옮겨 앉고,
참 이리저리 밥상 바꾸며 옮겨 앉는 분들 정말 눈 마주치기 힘들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불경스러워 행여나 벌을 받을 까 봐.
선교사님들 조차도 눈감고 귀 막고 손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여기서도 똑같이 사랑과 용서 보듬어 안음이 적용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구누구는 조심하라고 정보를 주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인터넷을 알았다면 메일로 바로 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선교사님들은 바울처럼 이라면서 그런 정보는 쉬쉬하니....
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속은 자들이 바보가 되고 그랬기 때문에 잘못된 자들이 계속
돌이키지 않고 나쁜 짓을 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이젠 개인 교회에서도 평신도가 해외에 나가면 선교사라며 기도해주고
노래 불러주고 종이 한 장 주어 선교사로 파송한다.
그 사람들도 나와서는 버젓이 선교사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분명 회사나 일로 나왔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간혹 선교사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모두 이용하고 뒤처리 없이 어느 날
사라진다.
제발 아무나 선교사로 보내지 말고 아무나 선교사라고 부르지 말고
아무나 선교사라고 믿고 실망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모두가 다 사도 바울 같은 선교사란다.
바울은 그렇게 편하게 할 것 다하며 살지 않았는데 다른 인물이 또 있나 싶다.
이젠 더 이상 실망할 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현실 앞에 주저앉는 많은 크리스천들을 보면서 슬퍼진다.
그런데
그 현실이 큰 산이 아니라 작은 지저분한 것들이기에 더 슬퍼진다.
하나님의 사랑은 좋으나 나는 깨끗하고 쾌적하고 폼나는 일만 하고 싶기에
포기하고 외면하고 좋은 포장을 싸서 양보를 한다.
그런 일 해도 괜찮을 만한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속 보이는 웃음과
감언이설로,
보통 이럴 때는 신앙성숙과 은혜. 순종이라는 말들로 포장이 된다.
내내 이런 생각으로 화냈다가 실망하다가 분노하다가 슬퍼하는 나 자신을 보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진짜로 저들이 고귀한 백성들이라서 저렇게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고상한 언어와 점잖은 몸짓이 나오고,
나는
태생이 무수리과라서 이러나?????
그리고
심통난 목소리로 항의를 한다.
말씀처럼 알곡 다칠까 봐 참는 것은 알겠는데요~~~~~
설마 예수님 재림까지 이렇게 놔두실 건 아니죠?
그러려나 보다.
아무 말씀이 없으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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