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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한번으로 족한 차가 퍼진 날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7. 7. 20.

전날 밤늦게 남편은 테스코를 갔다 왔다.

오른쪽 전조등의 전구를 바꾸기 위해서,

그리고

짤츠부르크를 갈 아내를 생각해서 차도 깨끗이 세차를 해 놓았다.

감사하게도....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은 4시 15분에

깨워서는 씻겨서 차에 태워 4시 40분에 출발을 했다.

첫 번째 주유소에 들러서는 고속도로 통행증을 사서 붙이고

공기도 시원하고 고속도로도 뻥 뚫리고 신나게 달렸다.

그래도 시속 140 은 넘지 않았다.

국경전 마지막 주유소에서 기름을 다시 채워서는 출발하여

6시 30분경에 국경에 도착을 하였다.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한 후 도장을 받고 통과.

1시간 뒤에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고는 비엔나를 지나 린츠 가는

고속도로를 타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앞으로는 이 고속도로만 타고 가면 잘츠부르크가 나오기 때문이다.

적당한 곳에서 아침을 먹고 가야겠다 하는데

백밀러로 보니 내차에서 하얀 연기가 소독차 연기처럼 뿜어 나온다.

기분이 이상하고 불안해지면서 서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액셀을 밟아도 시속 80을 넘지 못한다.

아!

문제가 생겼구나.

하고 옆으로 빠져나와서는 마침 쉬어가는 곳이 눈에 띄어서

차를 그쪽으로 천천히 들어가는데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뒤에는 공룡 같은 트레일러가 빵빵거리고,

겁먹어 마음은 급한데 차시동은 안 걸리고,

동서와 아이들이 내려서 차를 밀어서는 가까스로 주차를

한쪽에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남편은 딸들을 가까이 지내는 집에 하루를 맡기려고

나가는 중이었다.

 

항상 남편은 아침 일찍 하는 내 전화를 무서워한다.

언제나 사고가 났을 때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어쩌다 하는 전화에도 깜짝깜짝 놀라면서

"제발 아침에는 전화하지 마!" 하곤 한다.

 

 남편은 부다페스트에서 300KM가 넘는 곳에서 차가 서버린

마누라 전화에 황당하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

나도 걱정과 불안과 무서움이 들어 자꾸만 남편만 다그친다.

헝가리였다면 아무렇지도 안았을 텐데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이다 보니

더 당황스럽다.

 

남편은 전화로 엔진오일을 확인해 봐라, 냉각수를 확인해 봐라,

어디에서 어떻게 연기 났나, 언제부터였나, 시동이 꺼진 것은

심각하니 좀 기다려 봐라 등등등.....

아무래도 엔진오일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천천히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다.

입 벌리고 내장 다 보이는 이 차를 어이할꼬....

아이들은 내려서 차를 밀은 것이 재미있고 신나나 보다.

아이들 표정을 보다가 사진을 찍기로 했다.

서울 갔을 때 이보다 더 재미있는 추억거리는 없지 싶어서이다. 

 

 동서는 남편과 전화하는 동안 저 의자와 식탁에서 준비해 간 아침을

아이들에게 먹였다.

아침을 먹으면서 조카들이 하는 말이다.

"우린 아침 먹으러 오스트리아에 온 거야.

서울 가서 친구들에게 얘기해 줘야지.

아침은 오스트리아에 가서 먹고 다시 헝가리로 왔다고"

하며 재미있어한다.

심각하고 안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차를 돌려서 시속 40KM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남들은 180-200을 달리는데 난 고속도로에서 비상등 켜고 40으로 가니

다른 차들이 빵빵거리거나 불을 번쩍번쩍하며 쌩하니 비켜간다.

큰 트레일러들도 조금도 안 봐주고 비키라고 난리다.

결국은 갓길로 천천히 오다가 뒤차가 없으면 차선 안으로 들어가다가를

반복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며 왔다.

오다가 되돌아오는 것이 억울하여

쉰 두부라도 자르자며 오는 길 옆에 있는 아웃렛 매장에 가서

차도 식히고 구경도 하고는 다시 출발하였다.

아이들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물려서는.....

그래도 시속 40-60(내리막일 때는)이면 어떠랴 천천히라도

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불안 불안하면서 드디어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자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첫 번째 주유소로 들어가는데 또 시동이 꺼져서는 안 걸린다.

결국 남편이 견인차를 수소문하여 주유소로 보내주기로 하고

우린 기다리기도 했다.

 기다리는 동안 게임에 열중한 영빈.

 아웃렛에서 산 운동화를 신어보는 성빈.

개미에 대한 연구를 한다며 개미를 관찰(본인 의견이고 우리의 의견은

개미 괴롭히기다.)하는 세영.

그래도 견인차를 타볼 수 있다며 기대가 큰 조카들.

그럼,

어디서 이런 견인차를 타보겠나.......

 봉고차가 와서는 조립할 때부터 궁금했는데 결과는 너무나 싱겁다.

바퀴 달린 안전한 사다리를 조립하여서는 천정을 보수 공사하는 거였다.

뭐 대단한 것인가 싶어 동서랑 대체 뭐 하는 걸까? 하며 유심히 보았건만

싱겁다.

 캠프 갔다 오는 단체 학생들 버스가 시끄럽게 머물다 지나가고,

음메음메 젖소 실은 트럭이 냄새를 풍기며 머물다가 가고,

다들 지쳐갈 때쯤인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견인차가 왔다.

 차가 실리고 아이들이 차 안에 올라타고

동서랑 나는 견인차 운전석 옆에 올라타고 가는데 아이들

표정이 호기심으로 들뜬 표정이다.

부다페스트 전 140KM 전에 있는 교르의 한 카센터에 서자

작은 조카는 너무 재미있었나 보다.

내리자마자 뛰어와서는 "오늘은 행운이야. 견인차를 다 타고" 한다.

그 표정이 재미있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나도 웃는다.

그래.

여기까지 온 것은 정말 행운이고 감사란다.

 

 카센터 아저씨들이 다 붙어서는 열심히 보더니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못 고친단다.

다시 견인차 부르고, 남편이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는 달려왔다.

오는 동안 주유소에 있는 매점에 들어가서는 커피 한잔을 마셨다.

남편이 온 다니 마음이 편해지며 깔깔하던 목이 커피를 찾는다.

 

1시간이 좀 넘어 달려온 남편 말이 오늘 42도란다.

이 더위에 고속도로마다 퍼진 차로 장난이 아니란다.

 

이런 더위에 짜증 안 내고 잘 참고 기다려준 조카들도 고맙고,

국경까지 힘겹게 기어 온 차에게도 고맙고,

약속도 취소하고 하루 종일 전화에 매달려서는 속 탔던 남편에게는

너무나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약 2주일 전부터 차부터 손봐달라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미루었던 남편에게 화도 나고.

그런데

집에 데려다주고는 다시 견인차로 실려온 내 차를 보러 가야 한다며

나가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오늘이 제일 더운 42도라는데......

집에 오니 오후 8시가 넘었다.

차가 7시 30분쯤이었으니 꼭 12시간 걸렸다.

힘든 하루였다.

 

딸들에게 전화하니 엄마 걱정 말라며 거기서 자고 내일 온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처음 계획대로 그냥 거기서 재우기로 했다.

내가 피곤하고 차도 없어서 데리러 갈 수도 없기에....

밤늦게 온 남편에게 컵라면에 냉동밥 한 덩어리 해동해서는

주고 나니 밤 12시다.

 

정말 오늘은 너무나 길고 덥고 가슴 졸인 하루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근육이 많이 긴장을 했었나 보다.

온몸이 조금씩 아프다.

쉬다가 체력장 연습한 날처럼.

 

계획을 다시 수정했다.

하루하루 시간은 가고 차는 언제쯤 나오려는지....

마음이 또 급해지려 한다.

 

유리네 차를 잠시 사용해도 된다 하니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어찌하랴.

나중에 거하게 밥 한 번 대접하고 차를 써야겠다.

 

그러고 나니

또 감사하다.

잘츠부르크까지 가서 차가 퍼졌으면 어찌했을까.

만약 고속도로 안에서 시동이 꺼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쉬는 곳과 주유소 안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아이들이 짜증 내며 조급해하지 않아서 또 얼마나 감사한지,

차가 나올 때까지 사용하라는 차가 있으니 이 또한 감사. 감사.

이 더위에 걸을 수도 버스를 이용하기도 너무나 힘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든 안전하게 되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속이 타서 하루사이 얼굴이 새까맣게 탄 남편을 보니 미안하다.

정말 한 번으로 족한 경험이다.

두 번은 안 하고 싶은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