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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하빈이네 일상들

헝가리 우리 집 가을 추수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7. 9. 17.

신기하다.

아무 한 것이 없는데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니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더니 이젠 영글어 내 입에 들어간다.

 

참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

거름 한번 안 주고 벌레하나 잡아주지도 않고 이 많은 과실을

먹으니 말이다.

정말 하나님이 키우시고 난 그저 팔자 편하게 아무 때나 나가서

따 먹기만 하니 이게 웬 복인지....

 

오늘은 무화과를 땄다.

작년에는 열매가 없어서 잎만 무성한 나무를 쳐다보기만 했는데.

입에 넣으니 참으로 달다.

열매를 따면서 나무에게 말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장하다.

 너무 달아서 따면서 먹고 또 먹고.

어느새 배가 부르다.

 집안에 4그루. 집 밖 담장에 3그루의 호두나무가 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차 지붕과 유리가 말짱할까 고민될 만큼

큰 소리를 내며 우수수 떨어진다.

너무 많아 한 번씩 태우기도 하고 줍기 귀찮아 들락날락하면서

차로 깔아뭉개기도 하는 대접 못 받는 호두.

기나긴 겨울밤 열심히 까서 서울에 보내기도 했었는데 이젠

공항에서 걸린다니 이도 못하고 그저 우리 먹을 만큼만 까서

냉동고에 넣어 두고 호두파이나  빵 만들 때 넣어 먹는다.

가끔은 장조림에도 넣어 먹고...

내일은 교회분들이 오셔서 주워가기로 했다.

 뒷마당에 4그루의 사과나무가 있다.

한 번도 약을 안쳐서 못난이 사과다.

그래도 아삭아삭 한 것이 한국 추석에 먹는 사과 바로 그 맛이다.

이때쯤이면 딸들 꼬마친구들을 불러다가 사과 따기를 했었는데...

한 봉지씩 따서는 한아름 안고 집으로 가곤 했었다.

올 해는 사과나무 한그루가 병에 거리고 3그루에서만 사과가 열렸다.

한 동안 학교 간식으로 사과를 보낼 것 같다.

언제 사과파이를 만들어야겠다.

많이 만들어서 냉동고에도 넣어두어야겠다.

 한그루 있는 배나무에서는 너무나 많은 배가 열려서 남편이 지렛대로

받쳐 놓았다.

참 달지만 우리네 배처럼 아삭아삭하지는 않다.

그래도 당도가 높아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난 배를 보면서 꼭 구박을 준다.

" 야! 네가 무슨 배냐?  배라면 우리나라 배 정도는 돼야지 배라고 하지.

 어디 가서 배라고 하지 마라~~~"

생긴 거 하고는....

과일 중에서 배하고 감을 제일 좋아하기에 괜히 배 생각이 나서 심술을 부린다.

 4월에 심은 고추 밭에서 딴 고추.

초간장에 절여서는 겨우내 입맛 없을 때 먹고.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가는 된장찌개에 넣어 먹고.

요즘은 삼겹살 먹을 때 고추장에 찍어 먹고.

너무 예뻐서 보고 또 보는 고추다.

우리 텃밭에서 제일 예쁨 받고 귀한 대접받는 고추.

올 해는 깻잎이 생각보다 잘 안 됐다.

그래도 우리 4 식구 먹기에는 넉넉하다.

딸들에게 깻잎을 모두 따오라고 시켰다.

이제 추워지기 전에 따서 깨끗이 씻어서 냉동고에 넣어 두어야 한다.

겨울에 해물탕에도 넣고

돼지고기 볶음에도 넣고

감자탕에는 필수라서

조금씩 봉지에 담아서 냉동고에 넣어야 한다.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에 깻잎 몇 장만 넣어도 한 겨울에 그 향으로

 겨울의 칙칙함을 잠시 잊는다.

 

다음 주면 벌써 추석이다.

여기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가고 평상시와

똑같은 날들이다.

그래도 추워지며 호두가 떨어지니 마음도 스산해진다.

 

내일은 마저 무화과도 따고 사과와 배도 다 따야겠다.

고추도  고춧잎도, 그리고 깻잎도.

저러다 서리 내리면 꽝이니까...

그리고 과실수들도 동면에 들어가겠지.

 

벌써 일 년이 다 간 것 같다.

겨울준비에 들어가면 꼭 동면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앞으로 5개월간 겨울이라는 동굴 속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올 겨울은 또 어찌 지내나...

 

가마니로 호두나 주어야겠다.

망치로 기나긴 밤 호두나 깨 부수게...

 

해바라기도 많이 해야지.

보기 힘들어질 테니 해나는 날은 밖에 의자 놓고 앉아서 책을 봐야겠다.

앞으로 기껏해야 한 달 남짓이니 마음이 급해진다.

그리고 해나는 날이 너무나 아깝다.

이불도 말려야지. 큰 빨래도 하고.

그리고

내 머리도. 가슴도 말려야겠다.

곰팡이 안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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