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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생일 초.

by 헝가리 하은이네 2008. 5. 24.

내 생일 케이크다.

식사하고 커피를 주문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면서

생일 축하 노래가 경쾌하게 나오고 웨이터가 생일 케이크를 들고

나오더니 우리 테이블로 와서는 내 앞에 놓는 것이 아닌가?

와아~~~~ 신랑이 이런 깜짝쇼도 할 줄 알고.

확실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맛있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다. 그런데.....

 초가 이상하다. 가만히 보니 4 와 3이 바뀌었다.

이 작은 실수가 유쾌하다.

나 스스로 즐거운 착각을 한다.

엄마가 34처럼 젊어 보였나 봐. 그래서 아저씨가 초를 이리 꽂았나 봐.

무지 신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작은 녀석 갑자기 나를 부른다.

엄마, 이제야 알았어요.

뭐얼~~~~?

어제 엄마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초요. 

그거 웨이터 아저씨가 엄마 생일이

아니고 집사님 생일인 줄 알았나 봐요. 

그래서 초가 34가 된 거예요.

한다.

그것도 아주 진진한 표정으로. 장난이 아니라.

야!  엄마 생일인 줄 알고 한 거야~~~~

아니에요. 집사님 생일인 줄 알고 그렇게 한 거예요.

집사님이 더 젊어 보여서

그럼 엄마 생일인 줄 알았으면?

그럼 43으로 꽂았을 거예요.

우 씨~~~~ 머리에서 열난다.

너 오늘 생일 파티 안 해 줄 거야~~~  너랑 안 놀아!!!!!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작은 딸.

하빈이 표정은 사실을, 진실을 말했는데 왜 그러세요 표정이다.

어이없어 웃고 만다.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에미는 머리도 염색해야 할 만큼 흰머리도 많고,

이젠 눈도 침침하고, 딸이 보는 에미는 이제 늙었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집사님은 곱다.

우리가 말하는 화장과 머리손질, 액세서리로 꾸민 미인이 아니라

소박하고 수수한 아주 고운 분이시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4살이나 많은 언니지만 표정도, 말투도,

소녀 같으신 분이시다.

그러니 하빈이 가 그리 생각할 여지가 많다.

그래도 그렇지 짜식이.... 에미 생일에 어찌 그런 진실을

그리 대담하게 에미에게 바로 말한단 말인가.

너 오늘부터 새벽에 엄마 방에 못 오게 문 잠글 거야!!!!

우~~~ 씨~~~~~

 딸들이 둘이 용돈 중에서 얼마씩 모아서 사 준 화장품이다.

무얼 사줄까 고민하고 의논하고 하더니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그래서 엄마 밤에 바르는 크림이 얼마 전 떨어져 없다고 하니,

둘이 의논하더니 용돈에서 함께 모아서 사준단다.

기분이 좋아서는 함께 약국에 가서 밤에 바르는 크림을 샀다.

밤마다 바르면 쪼끔 젊어지고 예뻐지려나....? 

 구역 식구들이 선물로 준 예쁜 그릇이다.

식구들에게 갈비찜이나 된장찌개 끓여서 담아내야겠다.

그런데 아까워서 어찌 쓰나....

아무래도 장식장 속에서 한참을 머무르지 않을까 싶다.

 

신랑은  맘에 드는 것을 사라면 봉투를 준다.

에구~~~ 좋아라.....

현찰 좋아하는 마누라 어찌 알았는지. 사실은 얼굴에 다 쓰여 있고,

자주 난 현찰이 좋아 노래를 했으니 모를 리 없지만 무지 기분 좋다.

자꾸만 봉투 속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고...

싼 구두 하나 사고 오래오래 들여다 보고, 만져보고 해야겠다.

아까워서 어찌 쓰나......

 

그나저나 작은 녀석에게 어찌 잘 보이나?

그동안 너무 신경을 안 썼나?

일단 화장도 좀 하고 머리도 매일 묶거나 올렸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

옷도 좀 신경 써야 하나? 또 뭐가 있지?

에고고고고..... 새끼가 뭔지. 새끼 한 마디에 별 생각을 다한다.

 

그래도 참 감사하다.

지금 이 나이가 감사하고, 이 나이에 이 자리가 감사하고.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가족이 감사하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도 너무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