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미가서를 읽었다.
지난주로 구약을 다 읽었고 이번 주부터 신약을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올해는 일독이 쉽지 않겠다.
시간이 별로 없고 영어로 읽다 보니 속도가 느리다.
미가서를 읽은 뒤 계속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계속 그 말씀이 머릿속에서, 입안에서,
마음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래 이 늦은 밤 혼자 앉아 정리를 한다.
언제 끝나고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일단 천천히 적으면서
내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해봐야겠다.
(그리고 한 달만에 드디어 오늘(11월 23일) 정리가 끝났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다.
내가 평안할 때는 하나님은 사랑이며 자비하시며 인내하시는 좋은 분으로
알고 섬긴다.
그러다 나에게 큰 어려움이 생기면, 자식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나약한 인간은
갑자기 하나님을 무서운 귀신 섬기듯, 귀신 달래듯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일 년도 송아지를 바치면 하나님이 이 일을 해결해 주실까?
내가 일천 마리의 양을 바치면 내 자식 문제가 해결될까?
내가 내 죄를 위해 강에 올리브기름을 부어 넘치게 하면 이 죄가 용서받을 까?
이렇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송아지를 바치고 천마리의 양을 바치는 것은
참 쉬운 문제 해결 방법이다.
돈으로 되는 것이니까.
내가 안 변하고 나와 주변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불편한 상태로 유지되어도 되고,
나와 하나님의 바른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도 되는 거래일 뿐이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난 재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마음 없이 나를 무서워하며 귀신 달래듯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와 함께 동행하는 삶이라고,
네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는 것이라고,
거짓을 버리고 선을 취하라고.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길이고 마음의 갈등이 심한 힘든 길이라 자꾸만
쉬운 길을 가고 싶어 진다.
나도 그렇다.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 참 어렵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그냥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 때가 되면 되겠지........라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상대가 먼저 어떤 액션을 취하면 그에 따라 나도 반응을 하지 뭐~~~ 이런 식이다.
공의를 행하는 삶도 왜 이리 힘든지.
가끔은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확신이 안 설 때도 있다.
확신이 서도 행함으로 옮기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과 동행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나를 쳐
습관이 되게 훈련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가 화살처럼 지나가고 침대에 누워서야 반성을 한다.
사람의 이기심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은 못한다고 하면서도 자식은 참으로 잘 바친다. 어느 나라나 우상을 섬기는 나라에서는 제일 어려운 문제 앞에서 자식을 받쳤다. 자신이 아니라. 또 자식을 서원기도로 바치는 것도 난 이기적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계획이 계시다면 하나님과 그 자녀가 어느 날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부모의 어려움과 힘듦. 어떤 난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한다.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그 어린 자식은 모른다. 자신의 삶이 어떤 길로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커서 부모와의 갈등이 커진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에 쉽지 않은, 해답이 안 보이는 어려운 문제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고난의 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다들 내가 목회자가 안되어서 하나님이 나를 치시나 보다..... 그렇게 무서운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린다.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하나님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무나 사랑하는 딸들이 날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면서 바라본다면 얼마나 슬플까.
내가 원하는 것은 나랑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인데
값비싼 선물이나 돈을 보내고는 얼굴도 안 보여 주고 대화도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가끔은 딸들에게서 고백을 듣고 싶어서 물어도 본다.'
엄마 많이 사랑해?
엄마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하나님도 가끔은 나에게 물어본다.
다 아시면서.....
만약 딸들이 무리해서 아주 값진 것을 선물하고 그것으로 다했다 생각한다면
난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
아니라고.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들과 함께 밥도 먹고, 음악도 듣고,
친구들 이야기도 듣고, 직장생활 이야기도 듣고, 그리고 연속극도 함께 보고
시장에도 함께 가고 싶다고.
선물을 다시 돌려보낼 것 같다.
그런데 난 아직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딸들과 나의 관계만큼 친밀하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그 문제를 들고 해결해 주세요.
어리광 부리듯 떼를 쓴다.
그러다 편안해지면 바로 나 혼자 놀기 너무나 바쁘다.
그럼, 하나님이 나랑 놀고 싶어서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신 건가?
그렇구나.
내가 너무 내 딸들과 남편과 친구들하고만 노니까
하나님이 나도 함께 끼워달라고 내 어깨를 툭툭 치신 거구나.
봐달라고.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그러고 보니 말씀 중에 하나님은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쿨하시게도
본인의 소개를 "난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하고 하셨다.
요즘은 자꾸만 내가 하나님을 찾는다.
어디 계시나? 바로 내 옆에 계시지요? 저 지켜보고 계시지요?
몇 번씩 엄마 찾는 어린애 모양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 지금 나 혼자 있는 거 아니지요?
그리고 나 혼자 중얼중얼거린다.
운전하다가 너무 고운 아침 햇살을 볼 때면 딸들과 함께 고맙단 인사를 한다.
"딸들. 하나님이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 오늘 아침 저희에게 주시는 선물이에요? 제 맘에 꼭 들어요."
친절한 분을 만나도, 청명한 하늘을 보아도, 기분 좋은 한마디를 들어도
언제나 난 또 혼잣말을 한다.
하나님 저에게 격려해 주신 거지요?
하나님이 지금 저에게 괜찮다 말씀해 주신 거지요?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첫눈이 소복이 내렸다.
작은 녀석 신이 나서 카메라를 들고 잠옷 위에 파카를 걸치고는 나가서
사진을 찍고 눈을 만지고 스누피랑 어찌나 신이 나하던지.
하나님이 오늘 아침 우리 모두에게 주신 깜짝 선물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하얀 눈이 너무 이쁘고 좋으면서도 운전이 걱정이 되었는데
딸들과 스누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마음껏 즐겼다.
신이 나서.....
하빈이가 나가서 사진을 찍어 왔다. 아래 사진들은 모두 하빈이가 찍은 사진이다.
기분이 무지 좋았는지 하트도 여러 번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의 표현인가?
태어나 처음 본 눈에 흥분한 스누피.
마구 눈을 먹다가 그 차가움에 질겁을 하고.
그렇게 오늘 하루도 우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마음껏 즐기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그러겠지......
나도 남편도 딸들도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주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리 살겠지.
딸들이 에녹과 같이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를 이 늦은 밤에
간절히 빌면서,
하나님의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저 헌금만 많이 하고
그것으로 신앙생활 다 했다 하는 미련한 자가 안되기를,
예배당에만 꼬박꼬박 앉아 있었지 말씀 한번 제대로 읽지도 않아서
하나님을 전혀 모르면서 오해한 상태로 시간 낭비하는 어리석은 자가 안되기를
난 간절히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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