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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 가족여행/한국방문

드디어 명동에 도착. - 2010년 한국 방문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0. 7. 7.

드디어 명동에 도착.

평일 특히 월요일 정오쯤인데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명동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 긴장을 했다.

귀여운 토끼들.

지금 사진을 보니 하나 사줄걸~~ 그랬나 보다.

명동 초입에 있어서 귀엽다..

이쁘다~~만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하나 살껄 그랬다.

이 가발을 보더니 작은 녀석,

엄마, 크레이지 헤어데이에 정말 좋겠다, 그쵸?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우리 셋이서.

요즘은 저렇게 사진을 찍고는 컴퓨터로 장식도 하나 보다.

두녀석이 반씩 나누어서는 장식을 했다.

딸들,

엄마는 왕관, 왕관 씌워줘.

하은이는 매니큐어를 사고 싶다 해서

매장마다 다니면서 메니큐어를 칠해본다.

그리고 연두, 파랑, 분홍 세 가지 색을 샀다.

그 옆에서 나도 손가락마다 다른 색을  칠해 봤다.

나중에 지우는 것을 찾느라 고생했다.

충무 할머니 김밥을 먹었다.

엄마가 대학생 때 명동 여기에 와서

이 할머니 김밥을 자주 먹었었어. 맛있지?

생각보다 잘 먹는다.

작은 녀석이 안 먹을까 걱정했었는데...

다 변한 명동에서 이 충무 할머니 김밥과

너무나 작아서 눈에 잘 안 띄는 명동칼국수집이 짠하게 다가온다.

젓가락이 오르락내리락해서 신기해서 찍었다.

딸들 아마도 자석일 것 같단다.

밑에서 잡아 당기나...?

연기가 나는 것은 드라이아이스일 것이라고.

 아이돌 스타들이 프린트된 상품들을 보고 있는 하은이.

좋아하는 가수들이 나오는 콘서트나 프로그램 관람을 하고 싶다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노방전도 하시는 분.

너무나 신기한가 보다.

딸들은.

엄마, 알아들을까?

누가 들을까?

누군가 듣는 사람도 있겠지요.

더위에 고생이 많네. 

슈렉과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저 옷 속의 총각(?)은 무지 덥겠다.

슈렉 옆에 있으니 우리 얼굴이 무지 작아 보인다.

그렇지?

소비자 고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하는 조사란다.

딸들은 어린이 놀이터가 고무바닥이 좋다는 쪽에 스티거.

난  모래가 좋다는 쪽에 스티거.

딸들은 모래가 신발 속에 들어가고 모래가 깨끗하지 않을 수 있어서란다.

난 고무가 좋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냥 찝찝하고 모래의 촉감이 

좋아서 그냥 모래. 

달콤한 냄새를 따라가니 뽑기다.

하빈이는 별,

하은이는 곰돌이. 

 모양 상관없이 우린 그냥 톡톡 잘라서 맛있게 먹었다.

덥지 않을까?

저 아가씨도 그렇고 아까 밖에서 본 아가씨도...

이 더운 날씨에 우비용 긴 장화를 신은 아가씨를 보면서도 발에 땀이 날 텐데......

나 혼자 걱정.

딸들 말로는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한국에 가면 딸들하고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되면 정말 보고 싶다. 한번 알아봐야겠다.

이젠 다리 아파 쉬고 싶다는 딸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명동 성당을 갔다.

김수환 추기경 알지? 돌아가셨을 때 엄마랑 컴퓨터로 봤잖아.

글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왜~~~ 엄마가 김 수환 추기경님 프로 많이 보여 주었잖아....

글쎄....    에휴..... 왜 기억이 안 나요~~~~~ 

 

갓 쓰고 도포 입은 우리네 선비님이다.

 조용한 성당 안.

 김 대건 신부님이신가?

작은 소리로 딸들에게 말했다.

갓쓴 우리네 신부님이라고.

 김 대건 신부님.

딸들에게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많은 핍박이 있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죽었었다고.

 엄마 대학생 때는 데모가 많았어.

그때 정말 많은 대학생들이 경찰에 쫓겨서 명동성당 안으로 도망을 갔는데

김수환 추기경님이 성당안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보호하셨지.

그 뒤로 몇 번 더.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 많은 학생들이 죽었을 거야.

김 수환 추기경님은 용기가 있는 분이었어.

1984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던 그때는 이곳이 최루탄 냄새 자욱한 그런 곳이었다.

너무나 잦은 데모로.

그리고 희생 학생으로 인해 분노한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광화문 앞 종로경찰서 앞을 지나면서도 그때 일이 생각났다.

많은 학생들이 종로 경찰서로 연행되곤 했었다.

그 속에 내 친구도 있었다.

나중에 학교를 자퇴(본인 의사가 아닌 환경에 의해)하고 전주로 내려가 공장에 들어가더니

어느 날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던 친구.

그리고 결혼식에 가서 본 가슴 아픈 모습들.

그렇게 딸을 보내고는 가슴 치며 우시던 친구 어머니.

나중에 아들 낳다 해서 마지막 보았던 친구 얼굴.

그 친구 아들은 20대 중반이겠구나.....

딸들과 무지 덥다 하면서 걸어서 본 명동.

텔레비전에서 본 명동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나 보다.

원래 그래요.

명동에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우린 지하상가로 내려가서는

지하철을 못 타고 계속 걷고 또 걸어서는 시청까지 가서야 지하철을 탔다.

너무 걸어 다리 절며 집으로 왔다.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