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함께 유치원에서 근무했던 장영선 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시간 계산을 잘 못해서 선생님께서 40여분을 기다리셔야 했다.
어찌나 죄송하던지.....
아이들과 점심을 좋은 곳에서
하시고 싶다고 미사리에 예약까지 했다가 취소하시고
나를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서울여대로 향했다.
교문은 그대로다.
1984년 3월에 엄마가 이 학교에 입학을 했어. 딸들.
아동학과에.....
이 건물은 없었는데.....
하은이 돌 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교를 방문해 교수님을 뵈었으니까
그때가 1998년이었나 보다.
그리고 몇 년이야 도대체.....
바름관이란다.
기숙사인가?
이것도 없던 건물이다.
건물이 정말 많이 들어섰다.
너무나 낯선 모습이다.
너무나 반가웠다.
딸들.
이 건물이 생활관이었어.
모든 학생은 이 생활관에서 한 학기씩 생활해야 했거든.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을 놓치면 굶어야 했지.
학교 밖에는 식당이나 매점이 없어서 그냥
굶는 수밖에 없었어.
그때 엄마는 한 학기 동안 10kg이나 빠졌단다.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국제 생활관으로.
국제 생활관이면 뭐지?
학교 내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었다.
대학원 다닐 때 유치원은 있었는데 어린이집도 있다니.....
아이들이 교정에 나와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누워서 잠도 자고
책도 읽곤 했었는데.....
생활관과 실습 주택 시절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이 잔디밭 위에 누워서 어린 왕자 노래를 부르다
슬며시 눈물이 흐르기도 했었고......
맞다.
과학관이었었는데.....
기억이 난다.
대학원 졸업사진을 저 계단에서 찍었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 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마도 모든 대학이 이러지 싶지만
너무나 바뀌어 있었다. 내가 다닐 때와는.
손톱 손질하는 곳이란다.
대학 안에........
은행도 있고, 액세서리 가게도 있었고
안경점도, 옷가게도 있었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덥다고
시원한 아이스티를 사주셨다.
여름 농활!!!!
너무나 반가운 글씨.
아직도 농활을 하는구나.......
우리 학교는 특이한 것이 많았다.
생활관도 그렇고 실습 주택도 그렇고,
모내기도 그렇고.
하루를 모내기하고 와서는 끙끙 않아 누웠었다.
구급차 2대를 세워두고 하는 모내기였었다.
모내기하는 동안 코피가 터져 고생했었는데......
옆줄의 학생 하나는 졸도하며 뒤로
넘어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었다.
장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위해서 중국집으로 안내해
주셨는데 TV에서 본 그런 멋진 고급 중국집이었다.
한 번도 이런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우리는 그저
황송해하며 감사해하며 맛있게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너무나 죄송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대접만 받아서 죄송하다.
아침 일찍 우리 만나기 전에 떡집을 들러 아이들 줄 떡을 미리
사두었다며 주셨는데 열어 본 우리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 이뻐서 놀라고 준비해 주신 마음이
고마워서 감동으로 놀라고.
하은이가 하나 꺼내 보더니 꽃 모양이라며 보여준다.
그저 고마워서 언제고 헝가리에 오세요.
꼭 오세요 만 반복했다.
상계동에 갔을 때 백화점에서 어머님과 남편과 길이 엇갈려
헤매다가 정말 우연히 선생님을 1층에서 만났을 때
아이들에게 사주신 머리띠이다.
아들 하나만 두신 선생님은 딸들을 보자 머리띠를 하나씩 사주셨다.
"딸들, 나중에 엄마에게도 빌려줘, 알았지?"
장선생님은 엔젤 유치원 근무 시절 2년을 함께 근무했었다.
손재주가 많으신 분이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통통했던 나와는 달리 언제나 날씬을 지나쳐 말랐던 선생님.
그런데도 40명이 넘는 유치반 아이들을 전두 지휘하시곤 했었다.
태평무도 가르치고, 발레도 가르치고, 롤러스케이트 배울 때도
지하에 내려가 아이들을 챙기시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열정을 가지시고 소아암 아이들을 위해서
색종이 접기 봉사를 하신다. 교회 여성 합창단도 하시고,
여전도회 일들 하시면서 바쁘게 사시는 선생님.
나중에 나중에 나이 들면 재래시장도 구경하고 함께
이것저것 배우러도 다니면 좋겠다.
함께 봉사 활동도 다니면 좋겠다.
그때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이 궁금해진다.
다들 열심히들 살고 있겠지.......
한국에 와서 친구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나면서 그동안 외로웠던 내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파릇파릇 잔디가 돋는다.
헝가리로 돌아갈 때쯤이면 꽃도 필 것 같다.
한국에 와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지하철 화장실이었다.
너무나 깨끗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깜짝깜짝 놀란다.
여기는 9호선 양천 향교 화장실인데 여자와 아이 그림이 있어
당연히 여자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한순간 소인국에
왔나 착각을 했다.
모든 것이 작아서.
우리나라가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 를 느꼈다.
화장실 가기가 무섭지 않고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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