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향했다.
딸들과 꼭 한번 가보고 싶어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곳이었다.
양화진에 있는 기독교 100주년 기념 교회다.
이 재철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부다페스트 한인교회를 3번 방문하셔서는 말씀을 전해주셨고
큰 은혜를 받았었다.
예약 시간보다 20여분 일찍 도착을 했기에 우리끼리 한 바퀴
돌아보았다.
너무 많이 변했다.
20여 년 전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었다.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는 듯하더니 멈추었다.
안에서 영상으로 선교사님들에 대한
선교사역을 보고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듣고 나오니
우리와 다른 한가족이 한 팀이 되어
안내를 받았다.
모든 분들이 자원봉사자란다.
어찌나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시며
안내해주시는지.....
딸들에게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여러 교회학교에서 여름 성경학교를
맞아 방문을 하고 있었다.
저리 빨강 티를 단체로 입고,
또 시선을 돌리면 노란색, 파란색,
연두색.......
참으로 감사하다.
아가들.
열심히 보고 듣고 가슴에 새기세요.
이날 예약 방문객이 2000명이라고 했다.
너무나 기쁘다.
어느 교회인지 학생들이
예쁜 장미들을 들고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찾아서는 저리 곱게 꽃을 놓고
기도들하고 간다.
이분들의 사랑과 기도와
생명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
정말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20여 년 전이었나?
아무튼 아주 오래전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는 이렇지가 않았었다.
황량함. 삭막함. 뭐라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며 돌아 섰는데.....
참 맘이 기뻤다.
베델 선교사님 묘지이다.
옆의 비석은 나중에 한국사람들이 돈을 모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겨 세웠단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모르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신문을 만들어 알렸고, 특히 고종황제의 밀사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선교사님.
하디 선교사님 묘지.
캐나다 출신의 여의사 선교사님이시다.
이곳에는 하디 선교사님의 두 딸이 묻혀있다고 한다.
헐버트 선교사님의 묘지.
하은, 하빈 선교사님들이 계셔서 사양의술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특히 신문, 학교, 여학교가 생긴 거야.
사진을 보던 딸들 재미있나 보다. 교회 예배 사진인데
남자, 여자로 갈라서 앉아 있는 모습이.
옛날도 아닌 바로 100여 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한국의 은인이라 표현되는 할버트 선교사님.
방거 선생?
벙커 선교사님.
지금과는 다른 멜로디의 애국가(?)를 만드신 분.
한국인의 친구라 표현해 놓았다.
위더슨 선교사님의 묘지.
한국에 처음 구세군 선교를 하신 분이시다.
무어 선교사님 묘지.
무어는 '백정 전도의 개척자'이자 '백정 해방운동의 조력자'로
칭해지는 인물입니다.
무어는 미국 매코믹 신학교 재학 중 언더우드로부터 한국 선교에
대한 도전을 받고, 졸업 후 32세 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꾸준한 노방전도로 사람들을 모아서 곤당골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도 열었습니다.
학생들 중에 관자 골에 사는 백정 박 씨의 아들
‘봉주리 (Pong Choolie)’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봉주리에게서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려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무어는 박 씨를 여러 차례 위문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무어가 외국인 한 사람을 박 씨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바로 고종의 주치의 에비슨이었습니다.
에비슨은 여러 차례 왕진하면서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었고
마침내 박 씨는 완쾌되었습니다.
박씨는 왕의 주치의가 짐승 같은 백정을 치료해 준 것에
감격해서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였고, 세례를 받고
‘성춘’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에 나오던 양반 교인들은 백정과 한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릴 수 없다면서 예배당 앞쪽에 양반의 자리를 따로
마련해 달라고 무어에게 졸랐습니다.
무어가 ‘복음 안에서 신분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거절하자
결국 이들은 따로 교회를 세우고 갈라졌습니다.
한편 신분차별에 설움 당하던? 많은 백정들은 복음 안에 차별이 없다는
무어와 박성춘의 전도를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3년 후인 1898년 가을에 곤당골 교회는 분리되었던
홍문동 교회와 다시 합하여 백정과 양반이 함께 예배드리는
중앙교회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백정 교회로 불렀습니다.
이후 중앙교회는 1905년 8월에 예배당을 승동으로 옮겨
이름도 승동교회가 되었습니다.
장티푸스에 걸렸다 살아난 백정 박성춘의 아들 박서양은
에비슨이 세운 제중원의 학교(세브란스 의대의 전신)의
1회 졸업생으로 모교에서 10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백정 신분으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차별 없는 복음을 전하던 무어는 1906년 장티푸스에 걸려
46세의 나이로 제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 가족묘지이다.
4대가 이곳에 안장되었다
하니 그저 감사하고 사랑의 빚을 진 이 나라의 후손으로 그저
감사하여 고개를 숙일뿐이다.
하은이가 말한다.
엄마 많은 선교사님의 이름을 들었는데 언더우드 선교사님
이름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너무 많이 들어서요.
잊지 마세요.
엄마랑 연세 대학 안에 있는 언더우드 기념관을 가봅시다.
선교사님의 자녀들 무덤이다.
너무나 어려서 적응을 못하고 풍토병에 죽어간 어린 생명들.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 어린 생명들을 하나님 품으로 보내면서도 떠나지 않고
이 나라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죽어간 그분들.
내 딸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좇는 어리석은 허망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경이다.
성경 번역으로 인해 한글 보급이 활발해졌다고 한다.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었기에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여자들에게.
점자 성경.
미스 노에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절두산 성지로 왔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머리를 잘랐단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고 배교하지 않았어요.
스데반 집사님처럼 하늘을 우러러보며 찬양하며 순교를 했단다.
엄마가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평생을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시선이 가는 곳에 너희의 눈도 함께 가고
하나님의 손이 뻗치는 곳에 너의 손도 함께 가기를.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 너희의 마음과 발이
함께 가기를 바란단다.
내 딸들아.
순교자의 이름과 가족관계, 나이들을 하나하나 보는 하은이, 하빈이.
우리나라가 이랬었어.
처음부터 쉽게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찬양한 나라가 아니었단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감사하고 또 그 빚을 갚기 위해 많은 선교사님들이 해외에 나가 선교를 하시고 계시지.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 하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7월 2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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