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 명숙이가 아침 7시 예배를 드리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벌써 대학생인 큰 딸과 고등학생인 작은 딸을 둔 명숙이는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책까지 챙겨가지고 왔다.
언제나 언니처럼, 엄마처럼 세심한 친구다.
명숙이의 안내로 파주 헤이리를 방문했다.
말로만 들었고 사진으로만 봤던 파주 헤이리.
그리고 우린 제일 먼저 내가 좋아하는 옹기 박물관을 갔다.
다양하고 특이한 옹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방마다 올라온 옹기들이 한 집에 모여 있었다.
무지무지 큰 술독을 보면서
술독에 빠져 죽는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도 알았다.
조미료 통이라고 했다.
어쩜 저리 이쁜지.
만약 지금도 만들어 낸다면
정말 하나 사 가지고 싶었다.
저 조미료 통의 수가 많을수록 부잣집이란다.
고추장, 간장, 된장, 소금, 설탕.
그러면 5개가 필요하겠다.
참 이쁘다.
이 손도장은 어려서 도가에 들어오면 저리 손도장을 찍고,
옹기를 만드는데 이렇게 어린 손으로 만든 옹기가 비싸게 팔렸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난 카펫을 짜던 어린 소녀들이 떠올랐을까......
참 옛날 사진들이다.
어딘가에 나도 저런 사진이 있었는데.....
그리고 우리 셋은 추억 사진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주 옛날 눈이 오던 덕수궁에서 은복이 까지 4명이
눈을 맞으며 흑백사진을 찍었었다.
손을 호호 불면서 까르르르.... 웃으며
사진을 찍었었다.
21살 때 우리는.
그리고 나이 45에 다시 만났다.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늘었고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추지만
목소리는 똑같았다.
반갑다. 친구야.
옹기 박물관을 나와서 순애를 만나 다 함께
근대사 박물관으로 갔다.
엄마가 어렸을 때 이랬었어, 딸들.
이 사진을 보는데 맘이 푸근해진다.
딸들 많이 신기한가 보다.
엄마가 살던 그때 모습들이.
하빈이가 찍은 사진.
저런 골목이 있었지.
휘발유를 파는 곳.
그랬다.
저런 곳에서 기름을 사다가 곤로에 넣었었다.
영화관 앞에 선 하은이.
너무나 다르지?
그때 영화관은 저랬어. 포스터도.
곤로다.
그을음이 심했었는데.
가끔은 불길이 심해 불안하기도 했었고.
그래도 연탄불 위에서 요리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쥐 잡는 날.
지금은 잊힌 시간들.
그때는 모두 약을 받아다가 집집마다 약을 놓았었다.
그만큼 쥐가 많았다.
가끔은 쥐가 아니라 개가 죽어 나갔고
또 가끔은 쥐약 먹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댓돌 위의 검정 고무신. 마루 위의 다듬이.
정겨운 풍경이다.
난 색동 고무신 뽀득뽀득 닦아서 비스듬히
세워두는 것을 좋아했었다.
딸 ~~~
뭘 그리 봅니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도 저랬다.
보자기에 책을 넣어 옷핀으로 꽂아서 어깨에,
허리에 둘러매고 뛰어다녔다.
숙제 안 해왔거나 싸운 아이들은 저렇게 뒤에서 벌을 섰다.
서로 넘어오지 말라고 책상 위에 금을
그어 놓고 티격태격 짝꿍과 싸우곤 했었다.
딸들이 무지 신기한가 보다.
엄마도 저런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자연, 사회생활, 음악,.....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간 하은이.
책상이 작게 느껴지나 보다.
그때는 아이들은 많고 교실은 작으니 책상과
의자도 크게 만들 수가 없었다.
엄마가 고등학교 때는 한 반에 65명 정도였어요.
그리고 한 학년이 13반에서 15반이었으니까
정말 학생수가 많았지.
타자를 쳐보는 하빈이.
주판은 다 잊었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조금 배웠었는데....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딸들과 미스 노에미.
그림 그리는 동안 친구들과 옆에 앉아서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었다.
아이들 이야기, 남편 소식.
그리고 서로가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 소식들.....
시간이 이리도 빠를까.....
하빈이 그림과 미스 노에미 그림이다.
하은이는 이름 쓴다 해서 미처 찍지 못했다.
다시 유약 발라 택배로 보내준다니 참 편리하다.
파주 헤이리에서의 모든 비용을 명숙이가
아이들에게 선물로 해주어서 고맙고 미안하고.
농담 삼아 "그동안 모아 놓은 거야? 괜찮아?"
"응. 이 정도는 쓸 만큼 모아 놨어. 걱정 마."
웃는 친구가 고맙다.
그리고 순애 신랑이 파주 헤이리로 왔다.
점심을 사준다면서..... 그리고 푸짐한 점심을 대접받았다.
결혼 전에 만났을 때도 참 순하고 착하다.... 했었다.
20년이 지나서 만났는데도 여전히 순한 인상이다.
지금도 착한 신랑이란다.
이젠 자리 잡고 여유 있어 보이는 친구들.
큰 아이들은 벌써 대학생이 되었고 둘째들은
고등학생이니 우리 아이들보다 크다.
손을 잡고 아쉬운 인사를 했다.
가기 전에 한번 더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혹시 기회가 되면 헝가리에서 보자고,
이렇게 만나니 너무나 좋다고,
보고 싶었던 친구들.
다시 만나자. 친구야. 전화할게.
7월 25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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