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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속 빈 우렁 껍질이 되어가는 엄마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1. 7. 21.

아침 할 일 다 끝내고 한숨 돌린 뒤에 서울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 퇴근한 남편이 엄마가 수술받으러 입원을 하셨단다.

언제나 한국에서는 멀리 있는 딸이 걱정할까 봐서 말을 잘 안 하신다.

이번에도 비밀로 하라고, 절대 말하지 말라 했건만 정말 우연찮게

알게 되었고 수술이 한번 취소되었고, 7월 말쯤 할 거라 했었는데.....

다음 주쯤 전화해야지 했었는데........

어제 입원을 했고 오늘 아침 수술을 받으셨단다.

 

엄마는?

언니가 엄마의 수술과 상태를 설명해 준다.

복강경으로 수술을 했어. 배에 구멍을 5개 내고 하나는 좀 크게.

혹이 좀 큰 레몬만 하더라. 다 괜찮데.

엄마 바꿔줄게.

.....

아직 마취상태인지 목소리가 작고 어눌하시다.

엄마... 하니

어... 걱정 마..... 난 괜찮아.....

최서방한테 보낸 것 다 잘 받았어?

참기름도? 괜찮았어? (아마도 깨지거나 아니면 공항에서 뺏기지 않았냐는 의미일 게다.)

다 받았어. 괜찮았어. 엄마는?

내 걱정 마. 화장실도 갔다 왔어... 최서방 일이 잘되어야 할 텐데......

응.

 

마취에서 깨어나 딸하고 하는 전화에서 사위 편에 보낸 떡이랑 참기름 잘 받았는지

부터 묻는 엄마.

본인 몸은 무쇠로 만든 로봇 태권 V 인가?

언제나 그랬었다.

그냥 찬밥에 찬물 말아 남은 김치에 먹고는 잘 먹었다.... 하는 엄마였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속이 안 좋았고 그럴 때마다

요즘 내가 너무 잘 먹어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을 하셨단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체중이 많이 내려갔고 속이 안 좋으면 체했나? 많이 먹었나?

나이 들면 다 그러려니 무심했는데 건강검진센터에서 계속 전화가 왔단다.

큰 병원에 가보라고.

그렇게 5월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았고 위에 혹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힘없는 엄마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내 안에 스며든다.

논두렁에 떠있는 속 빈 우렁 껍질이 왜 떠올랐을까.......

힘없는 엄마 목소리가 속 빈 우렁 껍질 같다.

점점 엄마가 비워져 가는 것만 같다.

큰 산 같았던 엄마였다.

엄마만 있으면 무섭지 않았었다.

이 세상에 엄마 옆에만 있으면 평화로웠었다.

자꾸만 고개가 한국 쪽으로만 향하는 것도 그곳에 엄마가 있기 때문일 게다.

그 엄마가 자꾸만 작아지고 비워지고 가벼워져 어느 날 훌쩍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요 며칠 잠을 못 자다가 잠이 들면 어찌나 이를 악물고 잠을 잤는지 아침에 입이 안 벌어질 정도였었다.

어느 날은 입안의 살을 깨물어 자고 나니 입안이 상처투성이였다.

왜 그리 이를 악물고 잠을 자는지......

악몽을 꾼 것도 아니면서......

 

다음에 전화를 하면 그때는 엄마 목소리가 예전 같을 것이다.

야야~~ 아무 걱정 마라~~ 다 괜찮아.  다 잘 먹고 자꾸 살찔까 봐 걱정이다.

그저 우리 딸이나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애들 잘 챙기고,

그저 최서방 일이 잘되야할 텐데.....

그러실 게다.

분명히.

그리고 2-3년 뒤 다시 한국을 가면 그때는 엄마 손 잡고 연극도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도 가야겠다.

사진도 찍어야겠다.

엄마랑 찍은 사진이 없네.

 

 

어제 내린 비로 미처 따지 못한 살구들이 다 떨어졌다.

살구나무가 마저 살구들을 다 내려놓고 이제 쉬려나 보다.

긴 겨울 보내고는 연분홍 이쁜 꽃을 피워서는 꽃비를 내려주더니

달고 맛난 살구를 엄청나게 많이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이젠 다 털어버리고 다시 쉬려고 준비를 한다.

 

엄마도 지금 좀 쉬고 있는 거다.

쉴틈이 없는 엄마가 병원에서 잠시 누워 쉬는 거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말씀으로 가르치실 거다.

툭툭 털고 일어나셔서는 언제나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우리에게 주실 거다.

소녀 같으신 내 엄마.

언제나처럼

참 이쁘다. 참 맛나다. 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됐다, 됐어. 참 좋다.

모든 것이 엄마 눈에는 이쁘고 좋고 괜찮고 맛있고 감사한 것들 뿐이다.

긴 세월 힘들게 힘들게 살아오셨기에 범사에 감사함이 몸에 배었나 보다.

어쩌면 엄마는 다 내려놓고 훨훨 날아가고 싶은데 자식인 우리가 엄마가

필요해서 꼭꼭 잡고 못 가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이기적인 자식이라 해도 좋다.

그냥 엄마가 조금만 더 있어 주면 좋겠다.

환하게 웃으면서 지금처럼.

 

허기가 진다.

입맛은 깔깔하니 목구멍에서 안 넘어가면서도 허기가 진다.

계란을 삶을까..... 찐빵을 찔까..... 하면서 김에 찬밥 싸 입에 쑤셔 넣는다.

어렸을 적, 아마도 대여섯 살 적. 시골에 살 때.

엄마는 가마솥에 밥을 안치면서 밀가루를 반죽해서 밥 위에서 쪄주곤 했었다.

일명 밀가루 개떡.

밀가루 개떡에는 밥알이 붙어 있었다.

그때는 그 밀가루 개떡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그러다 서울로 올라온 해. 5학년이었나?

어느 날 엄마가 전기밥솥 같은 기계를 가지고 오셔서는 그 기계 안에 밀가루를 반죽해서

넣고 기다리니 빵이 만들어졌다.

정말 요술램프만큼 신기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열면 온 집안에 빵 냄새가 퍼지면서 둥그런 두툼한 빵이 나왔는데

진짜 맛있었다. 제과점 빵을 먹어 본 적 없는 우리에게 그때 그 빵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빵이었다.

지금의 부드러운 카스텔라에 비할까.......

산 건지 빌려오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몇 번 빵을 만들어 주셨고

다음 해에 우린 제물포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서는 빵 만든 기억이 없다.

속에 허기가 지니 밀가루 개떡도 먹고 싶고,

그 옛날 빵 기계로 만들어 주셨던 빵도 먹고 싶어 진다.

엄마 닮은 맛의 그 빵이.

아무래도 계란을 삶아야겠다.

허기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