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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이제부터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귀한 만남을.

by 헝가리 하은이네 2014. 7. 1.

며칠 전 갑자기 사진첩을 정리해야겠다는 조급증이 일었다.

그래서 앨범을 뒤적이고, 컴퓨터안의 파일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다가

세상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머물다 갔는데 사진이 거의 없었다.

다시 10여년의 기록인 블로그를 처음부터 다 확인을 해 봤더니,

손님이나 선교사님들의 사진은 없고 음식 사진과 정원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이제부터 우리집에 오시는 귀한 손님이나 선교사님들

(여기서 귀한이란 단순히 나의 주관적 판단으로.)

사진을 남기기로.

필름으로 현상한 사진들을 아침부터 스캔을 했다.

그렇게 몇장 남은 사진을 오늘 정리를 끝냈다.

 

2014년. 6월 28일.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시다가

강제 출국으로 잠시 헝가리에 머무시는 선교사님들.

하나님의 귀한 뜻이 있으시고 인도하심이 있으심을 믿는다.

 

방학이니 시간이 있어 식혜도 만들고,

 

메밀국수 그릇도 모두 꺼내서 다시 다 씻었다.

그냥 정성껏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음식 솜씨는 없지만 정성으로.  남편은 정말 맛있게 고기를 구웠다.

 정성껏.

 

졸탄은 가시기 전 우리 태산이랑 뽀뽀도 하고. 

 

이제부터 사진 남기고 싶어요. 아이들이랑 사진 찍어 주세요.

부탁을 드리니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우리 하빈이 태어나고 헝가리에서 뵈었기에

벌써 14년이니 짧지 않은 시간 함께 헝가리에,

아니 우리 옆동네에 사시는 참 좋은 의지가 되는 분.

 

 

이날도 신랑은 정성 들여 장어를 손질하고

정성 들여 숯불에 일차로 굽고, 다시 식으면 맛이 없기에

저리 불판에 따뜻하게 덥혀서 대접을 했다.  

 

긴 시간을 함께 했다고 다 친해지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은 아니 더라는 것.

그래서 더 귀한 인연이지 싶다.

방학이 되니 너무 좋다. 맛있는 거 사주셔서 맛있게 먹고,

또 이렇게 와주셔서 함께 담소도 나누니 감사하고 참 좋은 저녁.

정말 이젠 맘 힘들고 스트레스로 위경련 나는 그런 만남은 안 하련다.

하루가 귀한데.....

 

1997년 6월 28일. 신우영 선교사님 사모님이랑 예은이.

알바니아 내전이 일어나고 알바니아에서 사역하시던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헝가리로 UN이 제공하는 헬기와

항공모함으로 빠져나올 때 제일 마지막 헬기로 달랑

배낭 하나만 들고 나오신 신우영 선교사님 가족.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오셔서는 두고 온 알바니아 폴리찬 성도들이

걱정이 되어 신선교사님은 혼자 알바니아로 들어가셨다.

무장을 한 청년들이 국경까지 마중 나오고,

두 번의 반란군의 몸수색도 당하시면서 목숨을 걸고

내전 중인 알바니아로 혼자 가시고,

사모님은 금식을 하며 기도하시던 시기.

다녀오신 신선교사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내전으로 오히려 성도들이 내적으로 더 강해졌고

자생력이 생겼다며 한동안 우리 집에 함께 계시다가

내전이 길어지자 옆 아파트로 방을 얻어 나가셔서

일 년여를 헝가리에 머물다 알바니아 폴리찬으로 돌아가셨는데

내전의 후유증은 심각했다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런 곳에서 교회를 세우고 현지인 목회자를 세워서 독립을 시킨 후

금은 미얀마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신다.

이때 예은이가 4살이었으니 지금은...

헉!!  시집은 안 갔나... 모르겠네....

한 동안은 알바니아 선교사님들이랑 계속 연락이 있었는데

미얀마로 들어가신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예은이 선물을 보내면 한참 뒤에 사진이 오곤 했었는데... 궁금하다.

어떤 아가씨로 성장을 했는지.....

 

1997.8월 11일 방지일 목사님이랑.

1997년 그때 방지일 목사님께서는 연세가 90이셨다.

그때 하은이를 보시면서 "드보라 같은 여선지자가 되거라" 하셨었는데.

90이신 방지일 목사님은 헝가리에 머무시면서

여름에 아가서 강해를 하셨었고,

목사님을 모시고 데브레첸에도 다녀왔었는데.

지금도 그분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1999년 7월 King's Kids 학생들이랑.

예배드리고 점심은? 물으니 모른다고,

아마도 햄버거를 먹을 것 같다고.

그동안 한국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말에 바로

우리 집으로 가자 해서 모두를 데리고 작은 아파트로 왔었다.

그리고 돼지고기 꺼내 고추장에 버무려 볶고,

있는 반찬 냉장고 뒤져 다 꺼내서 아이들을 먹였었다.

 

2000년 5월 14일 이르드로 이사 오고 한 달 뒤 하빈이 돌을 했다.

마당에서.

헝가리에 계시는 선교사님들 모두를 초대해서.

 

2000년 6월 김수웅 장로님이 헝가리에 오셔서 청년들 집회를

우리 집 마당에서 했었다.

작은 아파트에서 이사와 마당에서 이런 모임을 할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했던 시간들.

 

2000년 8월 6일. King's Kids 학생들이랑.

먼 이르드까지 와줘서 고마웠던 어린 학생들.

더위에 단기 선교한다고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다

오랜만에 마당에서 모래놀이도 하고

목욕탕에서 머리도 감으며 어린 학생들 답게 신나게 놀다들 갔었는데.

 

2004년쯤? 알바니아 박성태 선교사님 가족이랑.

1997년 알바니아 내전이 났을 때는 딸만 있었고

그때 부다페스트에서 일 년여를 머무시면서

내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알바니아로 돌아가셨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아이들이 자란 것에 많이 놀라워했던 시간.

 

이 사진은 뒤의 목사님 중 한 분이 찍어서 나중에 보내주신 사진.

아마도 동유럽 선교사 수련회에 오신 분들이 아닌가...... 싶다.

 

2007년 6월 24일 밀알 사랑의 캠프로 오신 이재서 총재님과 한명수 목사님.

한명수 목사님은 이때 정원에서 식사가 너무 좋아

나중에 혼자 헝가리에 오셨을 때 다시 오셨었는데.

할아버지처럼 그랬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참 많이 맘이..... 그랬다.....

우리 집 정원을 바라보며 너무 좋아하셨고,

두고두고 그립다 하셨었는데.....

 

2007년 8월 17일 알바니아, 코소보 선교사님 방문.

이때 꼬마들은 이쁜 아가씨들이 되었고,

알바니아 조선교사님 자녀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알바니아 조선교사님은 남편의 선배님이신데 아직도

우린 알바니아에 방문을 못했다.

올해는 꼭 방문을 하도록 노력을 해야지... 나 혼자만 다짐. 

이러다 어느 날 아이들 결혼한다는 소식 듣는 날도 금방이겠다.

 

 

2008년 4월 이태희 목사님 방문하셨을 때.

사진을 보면 참 재밌다. 이젠 헝가리에 안 계신 분들이

그때는 계셨구나.... 그랬구나..... 해서.

 

2012년 8월. 코소보, 알바니아, 세르비아 선교사님들.

동유럽 선교사 수련회를 참석하고 돌아가실 때는

헝가리를 거쳤다 가는데 그럴 때면

감사하게도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가주셨다.

 

처음 돌도 안된 8개월 아기가 있다 해서 좀 걱정했는데

첫 만남에 미소로 녹여버린 우리 예은이와의 인연.

쌍둥이 오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다 받는 축복 덩이 예은이.

그 멀고 먼 코소보로 떠나던 아침 어려서 걱정이 좀

되었었는데 혹시나 올여름에 본다면 뛰어다니겠네....

예은이 올해 만나면 그때는 걷지도 못해 들었다 놨다만 했던

예쁜 샌들을 사줘야겠다.

 

2013년 1월 3일 김흥근 선교사님 첫째 디모데가

결혼하고 색시랑 헝가리에 왔다.

꼬마 디모데가 저리 커서 자기 월급으로 색시 대학 등록금도 대준다니...

아가씨가 너무 이뻤다. 얼굴도 이쁘지만 얼굴이 아닌 마음과 믿음이.

 

참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웠었던 질리안, 현운철 선교사님.

하은이 태어나고 만났으니 이 선교사님 부부와도 참 깊은 인연이다.

어쩜 저리 이쁘고 얌전하고, 영국 영화 속 상류층 숙녀 같은 질리안.

나한테 영어도 가르쳐 주고 함께 스위스, 독일 여행도 같이 했던 선교사님 부부.

저리 얌전하고 조용한 질리안 선교사님이

유태인 선교를 하려는 분들을 훈련시키는 선교사라는 사실에

처음에 놀랐었다는.

늦은 나이에 아들 하나 두고 지금은 영국에서 살고 계시는데

2011년에 부다페스트에 부부가 잠시 방문을 했었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그립고 하고 싶은 말이 참으로 많아도

가만히 손잡고 눈을 보면 모든 게 다 이해되고 통하는 분.

그래서 귀한 분들.

 

2002년 5월 12일.

어버이날 주일학교 행사를 우리 집 마당에서 했던 날.

에고~~~ 우리 하은이 너무 귀여웠구나....

 

2002년 우리 구역 모임.

참 오래전이다.......

근 집사님은 그 사이 미국에 가셨다가 지금은 독일에 계시고,

애신 언니는 헝가리에 다시 발령받아오셔서

문화원장이신 남편 내조하다가 다시 귀국하셨으니

그 시간이 참으로 길다.

보고 싶다. 서집사.

동갑내기 기도 친구.

지금 제일 나에게 그립고 또 그리운 것이

기도 친구이고 말씀 동지이다.

 

웬만한 구역모임, 송별모임, 부서 모임은 우리 집에서 했었다.

2007년 5월 31일 우리 구역 가족모임이 있던 날.

보고 싶다. 이화영 집사님, 나혜숙 집사님.

나 집사님은 꼭 친정언니처럼 옆에서 참 많이 날 챙겨주셨었다.

직장생활 시작하고 손님을 치를 때면 가다가 들르라 하고는

이것저것 만드신 반찬을 손에 쥐어 주어

허둥대는 나를 안심시켜 주시기도 하시고,

딸들에게도 꼭 이모처럼 다정하게 해 주신 분들.

지금은 중국에서 너무나 재밌게 신앙생활을 하신다고 하니 감사하다.

 

2007년 6월 9일.

구역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김치 만두를 만들 던 날.

이미 다 헝가리를 떠나고 안 계시네. 

 

2007년 6월 5일 유학생 김치를 담그던 날.

구역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유학생 김치만이 아니라

다 같이 나눠갈 김치까지 함께 담은 날.

그날도 너무 웃어 눈물이 나고 광대뼈가 다 아팠던 날.

국수 비벼 먹고 마당의 체리 따서 씻어 먹고, 참 행복했던 날.

보고 싶다.

 

2007년 10월 18일 여전도회 유학생 김치 담고 던 날.

지금 이 사진 속에는 나랑 최 집사님만 부다페스트에 있구나.....

 

2007년 4월 청년들 식사 초대.

신랑은 봄, 가을 한 번씩 꼭 청년들을 초대해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공부하느라 애쓰면서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이쁜 하나님의 군사들인 청년들을.

벌써 졸업하고 헝가리를 떠난 학생들도 있구나...

 

2009년 9월 26일 개학하고 돌아온 청년들 식사 초대한 날.

 

2011년 9월 청년들 식사초대.

 

2012년 9월 17일 청년들 식사 초대.

 

2011년 4월 18일. 관리부 가족 모임.

이 화수 목사님께서 식기도 해주심.

 

이화수 목사님 부부 귀국하시기 전 함께 식사 후 사진을 찍었다.

먼저 사모님께서 사진을 찍는다 하셔서 나도 핸드폰을 꺼내서 찍었던 사진.

찍고 나니 이렇게 볼 수 있어 좋구나.

이제는 눈치 보다 쑥스러워 말도 못 하고 그냥 지나지 말아야지.

꼭 사진을 찍고 싶다 말씀드리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학교 선생님들 식사는 2007년 6월 ICSB선생님들 식사만 여기에는.

하은이가 학교를 나를 따라 옮기면서 했던 마지막 식사대접이었다.

참 좋은 분들, 귀한 교육 선교사님들.

감사했던 시간들.

 

교회 모임이나 청년들 사진도 멀리서 그냥 찍은 것들이었다.

다음에는 그렇게 찍지 않고 물어보고 제대로 잘 찍어서 남겨야겠다.

 

어째 사진이 이리도 없는지.....

많이 아쉽다.

 

사진 정리를 하면서 다시 돌아보니 정말 감사하고 귀한 시간들이었다.

고맙고 고마운.

감사합니다... 가 절로 나오는 감사한 시간들.

이제 다시 맘 정리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며 그리 살아야지.

그래야지.

 

딸들이 크니 이젠 학교 모임까지 집에서 하게 되니 이 또한 감사.

배구 시즌  끝무렵 배구팀 모두 집으로 초대해서 남편이 바비큐를 했다.

내년에도 그리 해야지.

 

이리 시간이 지나고 나니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큰 복이고,

그런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리 10여 년이 지났어도 사진을 보면 보고 싶고 그립고,

그래서 또 감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