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피아노랑 김치 냉장고, 가구들을 이사했다.
12월 22일에 이사를 시작해서 2월 27일,
이제야 겨우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대문 활짝 열어 놓고 이사하는 걸 본
옆집 집시 아줌마가 아이들하고 와서는
너희 집이 팔렸냐? 하고 묻길래 아직이라고 정리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만,
얼마냐고 묻고, 혹시 버리는 거 없느냐고, 침대보나 이불, 커튼 없느냐고...
묻길래 사용하던 아직 빨지 않은 침대 커버 3개랑
하겸이가 어릴 때 보던 헝가리 책들(정말 좋은 책들인데),
그리고 선물 받았던 샴페인, 내가 사용 안 하는 그릇들, 이것저것 챙겨 줬는데.
마당에 있는 김치 냉장고 버리는 거면 자기가 가져가겠단다.
아니라고 버리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3번을 불쑥불쑥 물어본다. 생각 없이 "이겐" 하면 바로 가져갈 자세다.
애들 데리고 잠깐 집을 보겠다고 들어와서 여기저기 보면서
침대랑 가구를 자기한테 팔란다.
난 모르니까 남편이랑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정말 순식간에 여기저기 쑤시고 들추고 계속
이거 버리니? 이거 버리니? 계속 물으면서
자기가 이웃이니까 돈 안 받고 청소해주겠다면서 빗자루를 달란다.
괜찮다고 계속 괜찮다고 하고,
트럭이 한 번 더 와서 짐을 실어 가야 해서 청소 안 한다고 했는데
딱 한번 행사 때 사용한 와인잔 세트를 발견하고는 자기가 사고 싶단다.
남편이 와야 하니까 그때 물어보라고 하고,
갑자기 집시말로 두 아들에게 뭐라고 빠르게 말을 하는데 애들 표정이.....
집시가 나 모르게 집시말을 하면 뭔가 이상한 거다.
긴장하면서 책을 정리하고 (박스가 커서 책을 다 채우면 너무 무겁다고
아저씨들이 반만 채우라고 해서 다시 박스에서 책을 덜어 다른 박스에 담았다.)
있다가 조용해서 거실에 나가보니
헐~~~ 와인잔이 없다.
남편 옥타 행사였나? 딱 한번 사용해서 스티커도 그대로 붙어 있는
와인잔 12개를 그대로 몰래 들고 간 것이다.
머리가 하얘지고, 가슴이 갑자기 마구 뛰면서 우리야 없어도 되는
와인잔이지만 이건 아니지 싶고.
보니까 애들은 이미 자기 집으로 가고 아줌마가 막 나가려고 한다.
붙잡고 "홀 번 글라스? 홀 번 위벡?" 하니까
아줌마 애들이 장난감인 줄 알고 가지고 간 거 같다면서
담장 너머로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할머니가 우리 집 마당으로 오고 와인자 다시 가져오라 하자
할머니 집시말로 뭐라고 소리 지르고 투덜투덜(내 느낌, 억양으로) 하더니
집에 가서 와인잔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아줌마 전혀 민망해하지도 않고 계속 애들이 모르고 가져간 거란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너무 어이없고, 겨우 한 마디 하고 난 다리에 힘 풀려 주저앉아 있다가
남편이 다시 이사 아저씨들이랑 출발했으니
새 집으로 오란 말에 문 잠그고 출발하면서 너무 황당하고,
그래도 이젠 내가 아줌마 붙잡고 물어봤으니 나도 많이 변했다.
전 같으면 절대 물어보지도 못하고 행여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
화를 내면 어쩌나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남편이 오면
사라졌다고 어쩌냐고 했을 텐데.
나이 들면서 나도 강해졌네.
아침 11시에 와서 시작한 이사는 밤 7시 30분에 마무리되었다.
아저씨들 커피랑 티 대접해 드리고.
그런데 젊은 총각이 계속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마스크를 안 하고 있어서 계속 신경이 쓰이고,
하겸아~~~ 마스크 벗지 마. 마스크 하고 있어.
형아가 계속 기침을 하니까 하겸이 감기 걸리면 안 되잖아.
일하는데 마스크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피아니노는 거실 계단 아래에 자리 잡고,
피아노는 뒷 베란다에 자리 잡았다.
울 아들 레고들도 정리하고.
다시 보니 좋은지 밤 11시가 다 되도록
자기가 만들었던 레고 가지고 노는 울 아들.
오~~~~ 천체 망원경도 오고.
날이 좋은 날 울 아들이랑 별을 보겠다며 아빠가 곧 설치한단다.
딸들 어릴 때 샀는데 이르드에서는 사용을 못했었다.
벌러톤에 가서 실어 온 헝가리 앤틱 피아노.
너무 예뻐서 한국에 가져가야지 하고 25년을 가지고 있었다.
피아노가 필요하다는 분에게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고 빌려도 주고,
그러다 지하에 놔두었는데 드디어 빛을 보게 된 내 앤틱 피아노.
예쁘다.
앤틱 현미경이네.
책상 밑에 있던 다트판도 꺼내서 걸었다.
아들이랑 아빠랑 게임하게.
어디에 뒀는지 몰랐던 친정엄마가 보내준 부채도 찾았다.
붓글씨 쓰시는 목사님이 직접 쓰셔서 친정엄마에게 선물을 하셨는데
언제였나..... 엄마가 보내주셨었다.
잘 보관한다고 넣어두고 못 찾았었는데....
큰 트럭 두대에 다 싣지 못해서 못 가지고 온 앤틱 짐들이 아직 남아 있다.
책 박스가 워낙 많아서리. 하겸이 책만 올리고
나머지 책 박스는 다 지하에 놓기로 했다.
이르드 청소를 해야 하니까 다음에 가서 실어 오면 끝이다.
이제 집 정리해서 부동산에 내놔야지....
옆 집 집시 아줌마가 아주 정을 떼어 주시네....
돌아가신 옆 집, 앞 집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아쉬워하며 인사 나누고,
우리 집에 있는 좋은 것들 선물로 드리고 우리가 간 뒤에도
우편물도 받아 주시고 빈 집 수시로 봐주셨을 텐데 어쩌다
집시 이웃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너무 아쉽다.
사실은 짐 정리하면서 웬만한 것은 다 드리고 오려고 했었는데...
저녁에 보니 남편이 그 와인잔들 다 가지고 왔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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