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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방아쇠 증후군이라니..

by 헝가리 하은이네 2021. 12. 18.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에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내  나이 또래의 많은 분들이 나처럼

손가락이 안 펴지거나 주먹이 안 쥐어지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정형외과에 갔더니만 "방아쇠 증후군" 이란다.

왜 방아쇠 증후군이라고 병명이 지어졌는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약도 지어주고,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물리치료 방법도 알려주시고.

그런데 매일매일 삶이라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보니 점점 손이 붓는다.

요즘은 손뜨개 인형도 안 하고, 부엌에서 요리할 때도 손가락이랑 손목에 힘이 많이 가는 

요리는 안 하려고 피하고 하지만서도 쉽지가 않다.

처음 진료를 갔을 때 의사가 직업이 뭐냐고 물었었다.

의사는 모르나 보다.

가정주부들이 매일매일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손을 사용하는지.

모든 것을 힘주어 짜고 다지고, 누르고... 손과 손목을 혹사하는지 모르는 거다.

유치원 교사 시절부터 내 손은 아가씨의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시간 말고는 물걸레 들고 닦고, 매일 교재 만든다고 칼과 본드를 

들고 살았다.

처녀 때부터 내 손은 곱지 않은 아줌마 손이었는데 2년 전부터 밤에 손가락이

펴지지 않더니만 요즘은 아프기 시작한다.

아마도 관절염이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은데....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나처럼 방아쇠 증후군을 앓는다는 것이다.

1년 전에 찍은 동영상인데....

지금은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어느 날은 2 손가락이, 심할 때는 3개가 안 펴진다.

그런데 손가락이야 아침에 주무르고 또 주무르면 괜찮은데 손이 퉁퉁 붓는다.

전보다 더 부엌 일도 안 하고 웬만하면 손가락, 손목 쓰는 일도 줄이고 있는데.

집 안 바닥  물청소도 얼마 전부터는 일회용 물걸레를 사용하고,

요즘은 만두나 스프링 롤 같은 것도 안 만든다.

정말 만두 한번 해서 냉동하고 나면 다음 날은 손이 퉁퉁 부어서.

며칠 전에는 시판용 만두 사다 구워줬다. 

김치도 요즘은 잘 안 한다.

그런데 어째 손은 더 붓고 새벽에는 아프네.

 

혹시.....

일을 안 해서 아픈가?

다시 만두도 200여 개 만들고 스프링 롤 만들어 냉동하고 김치 30kg 담고,

걸레 힘주어 짜서 바닥 닦고,  그러면 괜찮아지려나. ㅎㅎㅎ

 

예전 우리네 엄마랑 할머니들은 세탁기도 냉장고도 청소기도 없던 시절에

어찌 사셨을 까.... 싶다.

얼마나 힘들고 손가락 손목 온 뼈마디 뼈마디가 얼마나 쑤시고 아프셨을까 싶다.

이렇게 좋은 시절에 사는 내가...

방아쇠 증후군이라니 말이다.

통증이 심해지면 먹으라고 진통제를 지어줘서 가지고 왔는데....

요즘 먹어야 하나 좀 더 기다렸다가 먹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일단 먹게 되면 자꾸 먹고 싶어질 까 봐서, 그러다가 약이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좀 더 참아보자 기다려 보자 하고 있다.

의사 말이 물리치료 계속하다가 통증이 심해지면 약을 먹고

약으로 안되면 그때 수술하자 했는데. 일단 수술은 미루고 또 미루고 싶다.

한국 가는 것도 쉽지 않으니....

 

오늘 옆집 마리아 니니한테 혹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안일 해주실 분

소개할 만한 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청소랑 무엇보다 마당 정리할 분이 계신지.

 

재택근무하는 작은 딸이 카톡을 했다.

빵을 구웠으니 집에 가는 길에 와서 가져가란다.

그래서 같이 점심에 만나서 밥 먹고 빵을 받아다가 하겸이도 먹고,

남편도 먹고....

어느새 커서는 인턴이지만 일한다고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녀석이 신기하다.

남편 사무실에 이 사진이 있더라는.

도대체 내 나이 몇 살 때였나....

아마도 결혼 전이니까 29살 때였던 거 같다.

어린이집 아이들 졸업사진 찍을 때 사진사 아저씨가 아이들 사진 다 찍으시더니

"원장님도 사진 한 장 찍죠?" 하더니 서 있던 그 자리에서 바로 한 장 찍어 준 사진이다.

그 사진이 울 신랑 사무실 책상 위에 있네.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수시로들 사진 찍지만 저 때만 해도 사진기에 필름 넣어서 찍고

현상해야 할 때라서 사진이 별로 없었다.

지금 보니 그 사진사 아저씨가 너무 고맙다.

마지막에 갑자기 "거기 서 보세요. 원장님도 사진 한장 찍으세요" 하고 찍어 주시고

현상도 해주시고. ^ ^

 

29살 늦가을? 초 겨울? 

30여 명 아이들과 재밌고 행복하고 그러면서도 전쟁처럼 지낸 시간들이었다.

6살 자폐아 포대기로 들쳐 없고 수업하면 친정엄마는

시집도 안 간 보기도 아까운 딸이 다 큰 녀석 들쳐 업고 수업한다고 속상해하고,

발달장애를 가진 녀석이 대소변을 못 가리니 데리고 들어가

씻기고 옷 갈아 입히고 하면 또 친정엄마는 속상해하시곤 했었다.

어린이집을 하면서 어린 녀석들이라서 행여나 장염에 걸릴까 봐서

매일 닦고 씻고 소독하고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음식하고 살림하는 일이 손과 손목을

엄청 무리해서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집 안일이 별거라고... 하겠지만 정말 손이 쉴 틈이 없다는 걸 알았다.

애들 어릴 때는.

특히나 헝가리에서 살다보니 모든 것을 다 직접 해야 했다.

(해외에 살면 대부분 그렇다.)

한국에서는 간단히 살 수 있는 거 하나하나를 다 직접 손으로 해야만 했다.

지금은 안 하지만 두부도 만들어야 했고,

먹고 싶으면 시루떡도 쌀가루 비벼가면서

해야 했고, 돼지머리 삶아 누르고,

정말 학다리 하고 서서 부엌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새벽에만 아프던 손이 이젠 저녁만 되면 뻐근하고

조금씩 쑤시다가 퉁퉁 붓는다.

정말 엄마나 할머니 세대가 들으시면 " ~~ 라떼는...." 하시면서 

이 좋은 시절에 살면서... 하실 텐데. 

내 딸들은 더 좋은 시절에서 사니

에미처럼 방아쇠 증후군 이런 건 안 걸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