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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5살 꼬맹이들이 이렇게 멋지게 잘 성장하다니.

by 헝가리 하은이네 2024. 6. 8.

목요일, 

혼자 골프장에 가서 연습하는데 부다페스트 한인 장로교회 정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헝가리 피츠 의대로 오는 학생을 부탁하고 싶다 하시면서... 대화 끝에

막내아들 진석이의 첼로 독주회가 내일 있는데 하겸이랑 오면 어떠냐고.

하겸이도 첼로를 하니까 좋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당연히 가야지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드리고,

금요일 오후 울 아들 축구 클럽 갔다가 땀에 젖은 아들 대충 얼굴 씻겨서

출발했다.

아빠랑 마라탕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없어 울 아들

토마토소스 마라탕 몇 젓가락 먹고 바로 리스트 리기 아카데미로 출발.

(리스트 생가로 현재는 리스트 페렌츠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콘서트도 한다.

지금 리스트 음대가 생기기 전에 이곳이 리스트 음대로 사용되었다.)

마침 꽃 가게에 가니 만들어 놓은 꽃 바구니가 있어서 사고,

울 아들 손에 들려서 리스트 올드 아카데미에 도착.

5분 늦었다.

배고픈 울 아들 몇 젓가락 먹지도 못하고 출발했는데도. 

벌써 시작했기에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면서 

연주곡들 살펴보고,

첫 곡이 30분이다. 

두 번째 곡 시작 전에 들어가서 뒤에 앉았다.

2011년,

저런 꼬마였는데,

첼로 영재로 지금 고3인데 벌써 비엔나 음대 첼로 1학년이라고.

정 목사님 결혼 전에 잠깐 뵙고, 결혼하고 큰 딸 예본이 돌 지나 헝가리에 오셔서

둘째 예니, 그리고 셋째 진석이를 낳고 지금까지 헝가리에서 사역하신다.

함께한 시간이 25년이 훌쩍 넘는구나...

예본이 가 벌써 대학원 졸업이라 하니.

사모님과 잠시 이야기하면서 이젠 다섯 식구 함께 모이기 참 어렵다고,

이런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함께 식사를 했었다.

이러다 어느 집이든 청첩장 보내올 날이 곧 오지 싶다. 

그리고....

PS. 짐 부부를 만났는데 이자벨이 같이 왔단다.

이자벨이 나에게로 오더니 나를 꼭 끌어안고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네가 정말 보고 싶었어.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네가 나를 울리는구나. 나의 소녀.

목소리가 5살 때랑 똑같아.

이번 GGIS 뮤지컬에서 주연을 맡았고, 음악을 전공할 거라는 이자벨.

이자벨은 5살 어린 소녀였을 때도 공주님이었다.

항상 팁토(발뒤꿈치를 들고 발레 하듯 걸었다. 항상.)를 하고

어디서든 저리 댄스를 했다.

사근사근 상냥하고 천사 같은 이자벨.

너무나 멋진 숙녀가 되었네. 나의 어린 소녀가.

갓 태어났을 때 봤던 이자벨이 5살이 되어 내 클래스에 오고,

쉬는 시간이면 내 머리를 땋고, 내 머리에 들꽃을 꽂아 주면서 

내 머리를 가지고 놀던 공주님이 벌써 16살이 되어 뮤지컬 

주연을 하다니. 

다들 줄 서서 진석이에게 꽃을 전달하고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지금은 저학년 디렉터가 된 (내가 근무할 때는 2학년 선생님이었던)

미스 리즈와 이야기를 하고, 

하빈이 추천서를 써주었던 미스터 젠슨과 잠깐 이야기하고,

하은이 소식, 하빈이 소식이 궁금한 선생님들.

하은이는 세멜바이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고,

하빈이는 졸업하고 지금 삼성에서 일하고 있어.

그리고 울 아들 보면서 다들 인사하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전 동료들.

너무 반가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맨 끝이 되었다.

그 사이 울 아들 무대 위가 궁금했는지 무대 위에 올라가더니

바로 내려온다.

왜? 피아노 의자에도 앉아보지 그래.

쑥스러운지 바로 내려오는 아들. 

건물 관리인이 올라오더니 이제 문을 잠가야 한다며

안에 불을 끄기 시작하니 그제야 사람들 짧게 짧게 인사를 한다.

사실 한 명씩 다 꽃을 주고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다.

Ps. 브라이언과 미스터 젠슨(이름이 정확하지 않은 듯. 내가 학교 떠나고 오신 분이라서.

그런데 하빈 이를 기억하고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전해 달라 하셨다. 하빈이에게 사진을

보내니 아직도 학교에 계셔? 한다. 12학년때 하빈이 가 학생회장이었고 저분이 대학

추천서를 써주셔서 기억을 하는 듯. 하기사 우리 딸들은 모든 선생님들이 절대 잊을 수 

없기는 하다. ^ ^)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내려가신 뒤에.

 

 

진짜 우리가 제일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이 형아에게 꽃다발을 주며

"형 축하해" 했다.

어찌나 어색해하던지.

그리고 울 아들이 물어봤었다.

"형이 엄마 기억해?"

"글쎄... 엄마가 학교 떠나고는 거의 못 만났으니까 기억 못 할 수도 있지."

하고,

진석이에게 나를 기억하냐고 물으니 기억한단다. ㅎㅎ

"하겸아, 형이 엄마 기억한대."

이렇게 아이들이 성장하고, 우리는 유행가 가사처럼 익어가면서

성숙해지는 걸까?

나이는 들어 노인은 되는데 성숙해지지 못하면 어쩌나..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마지막 곡,

울 아들한테

형아 하는 거 잘 봐. 손이랑 보노 움직이는 거랑 비브라토랑.

했더니만,

당연히 형은 잘하지~~~

엄마가 동영상 찍으면 집에서 보고 해 볼 거야?

응.

했는데....

흉내도 내기 힘들듯.

 

참 좋은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들도 만나고.

집에 와서 늦은 밤 큰 딸하고 GGIS에 다닐 때 이야기를 했다.

새벽 2시까지.

언제였나... 상여금을 현찰로 받고 봉투를 열고 나서 

그 봉투를 성경책에 그냥 끼워 넣고 기도했었던 이야기.

"하나님, 내 노동의 대가가 이거라면 받겠습니다. 아니라면

내 몫을 돌려주세요." 했던,

(평상시의 50%만 있었다.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봉투의 이름을 볼펜으로

지워서 내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한 상태로)

그리고 딱 일주일 뒤에 미스 줄리가 수업 중에 내 교실로 오더니 

"이거 미스 파올라가 너 주래. 네 것이라고"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머지 50% 라는 것을.

그리고 일주일 동안 성경책에 끼워 놓았던(집에 안 가지고 가고 교실에

그냥 두었었다. 내 것이 아니니까.)  봉투를 꺼내서 집에 가지고 가면서

고백했었다.

"하나님, 당신은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하은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은 정말로 신실하시고 공의의

하나님이시라고. 

내가 일한 것 보다 더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하고, 일을 정말 열심히 했지만

그 댓가를 모두가 다 받지 못한다는 것도 꼭 알고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내가 수고한 만큼 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한다는 걸 잊지 말라고.

( 네손으로 일한 만큼 네가 먹으니, 이것이 복이요, 은혜이다.   시편 128편 2절)

 

그때 좀 오해도 있었고 맘 상한 일들도 있었고,

그런데 각자의 포지션이 있기에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설명을 하거나 하지 못하고 오해받은 상태로 그냥 넘긴 일들이,

좋아하는 학생과 싫어하는 학생을 공개적으로 하신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들,

학생회장을 2년 하면서 큰 아이는 마음의 상처가 많다. 

아직도 그런 일들이 떠오르면 너무 맘이 상하고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헝가리를 떠났고, 행여 만날 기회가 있다 한들

기억도 못 할 것이며, 혹시나 이야기를 한다해도 그런 사람들은

그런 가치관으로 평생을 살 것이기에 절대 미안하다 진정한 사과는

없을 것이고 온전히 우리 딸이 스스로 강해지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

그때 하은이를 위해서 나서주었던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 잊지 말라고, 우리도 불의한 일에 그렇게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어제 새벽까지 딸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나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뒤에서 뭔가 일어난 일들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밑에 가라앉은 불순물들이 

좀 버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 부질없는 일들이고, 누군가의 말장난에 놀아난 시간들이 나중에 

부끄러울 것은 그들의 몫이고, 겉과 달리 뒤에서 인종차별, 학생 편애를

너무나 공개적으로 한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도 사실 그들의 몫이니까.

 

집에 오면서 아파서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들이 지났구나...

오늘 그들을 볼 때 반갑고 편안한 내 상태를 지켜보면서 좋았다.

 

특히나 나를 꼭 끌어안고 너무나 보고 싶었다는 작은 나의 소녀가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고마워. 나도 정말 보고 싶었어.

이자벨. 그리고 나의 아가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