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경기장에서 188번 버스를 타고 타워브리지로 가는 길.
아들이랑 나는 버스 2층으로 올라가서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아들은 조금 있다 잠이 들었고...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두 개
남았을 때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는 사람이 좀 많았고, 내 앞에 20대 초반의 검은 머리 젊은 여자애가
나를 계속 쳐다보고, 내 옆에 유모차 안에서 애기가 칭얼거리고..
버스가 신호등에 걸리자 젊은 여자애가 내 뒤로 갔다.
내리려나 보다 했는데 내 뒤로 가서 내 가방에서 현찰을 넣은 봉투를
꺼내갔다.
느낌이 있었다. 어떤....
그런데 유모차에 있는 아기가 칭얼거리는 거에 신경이 쓰이면서..
그렇게 900유로 정도 들어 있는 돈 봉투가 사라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을 확인했더니.... 없다.
딸들은 영국에 가면서 왜 유로 현찰을 가지고 가느냐고...
현찰을 가방에 그렇게 넣어가지고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눠서 넣든가 했어야지...
그리고 요즘 누가 현찰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맞다.
나는 옛날 사람이다.
그래서 카드가 있어도 혹시나 카드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어디를 가려면 현찰이 있어야 안심을 하니 정말 난 옛날 사람이다.
영국에 가서 현찰을 지불하려 하니 카드로 하라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카드만 사용하다가 왔다, 부다페스트로.
현찰은 택시 드라이버에게 5유로 팁 주고, 아침 식사한 후에 2유로 팁을 주고,
방 청소하는 메이드 앞으로 2유로 놓고...
그게 다였다.
돈 잃어버리고 깨달았다.
이젠 현찰은 잔돈만 가지고 다니면 되는 거라는 것을.
내 카드는 생활비를 받는 통장이라서 이번에 영국에 가면 하겸이 사주는 거랑
식사등은 나에게 있는 현찰로 사용하려고 가지고 갔었고,
토트넘에 가서 아들 축구복이랑 축구공을 계산 할 때
바로 현찰을 꺼냈더니만카드로 계산해 달라는 요청.
그렇게 현찰은 사용도 못한 것이다.
아들이 이렇게 의지가 되다니...
엄마가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안 우리 아들.
"엄마 자꾸 생각하면 속상하니까 이제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점심은 가방에 있는 약과 먹으면 되니까 우리 점심
안 사먹어도 돼요."
한다.
돈 잃어버렸다고 울 아들 점심을 못 사줄까나.... ㅎㅎ
"그래도 엄마 카드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치"
하는 아들.
그래.. 정말 다행이다.
돈만 가져가서.
돈을 잃어버려서.
여권이랑 신분증이 있고, 카드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다음 날 아침 식사하면서 아들이랑 나눈 대화.
- 하겸아, 참 감사하다.
우린 그 돈이 없어도 괜찮으니까 감사하다. 그치?
그런데 엄마 돈을 가져간 그 여자가 엄마 돈을 나쁜 곳에 사용하지 않으면
참 좋겠다. 어디든 꼭 필요하고 간절한 그런 곳에 사용하면 좋겠다.
- 총 사는 거? 총 사면 안 되지.
- 엄마 돈으로 총은 못 살 거야. 분명히 나쁜 방법으로 돈을 가져간 거지만,
절대로 그런 방법으로 남의 돈을 가져가면 안 되지만 그래도 가져간 엄마 돈이
간절했던 곳에 사용되면 좋겠다 나쁜 그런 곳 말고.
그리고 기도했다.
900유로가 좀 넘는 돈인데...
내가 왜 생각 없이 그냥 돈을 다 가지고 왔을 까요.
왜 평상시와 달리 돈을 나눠서 보관하지 않고
그냥 배낭에 다 넣어서 들고 다녔을 까요.
우리가 토트넘에서 바로 버스를 안 타고 두 정거장을
아들이랑 걸은 뒤에 버스를 탔고,
2층에서 두 정거장 미리 아래로 내려왔고,
내 앞에 그 여자아이가 있었고,
한참을 나를 쳐다보고는 순식간에 돈을 가져 갖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가져간 돈.
내 것이 아니었던 게지요.
예수님,
생각해 보니 그 누군가가 나에게 너무나 간절함으로, 절박함으로
부탁을 한다면,
그럼요. 도와드려야지요 하며 돈을 줄까요?
혼자 상상을 해 봤는데 아니더라고요.
내가 정말 잘 아는 사람이고, 그 형편을 다 알고 있어야 도움을 주려고 하겠지요.
아니 아는 사람이라 해도 혹시나 진실이 아니면? 하고
확인하고 확인하고...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예수님,
깨어있는 제가 되어, 영적인 예민함으로 내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 누군가의 간절함을,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확인하고 계산하고 내 것을 준다는 마음을 담아 뒤까지 추적하는
그런 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가는 곳에 나의 시선이 따라가며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이번에 내 거라고 생각했던 돈이 남의 손으로 가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돈 안 잃어버렸다면 그대로 부다페스트로 가지고 왔겠지.
그리고 다시 서랍 안에 있겠지.
그러다가 이숲교회와 희망의 조각들 운영에 사용되었겠지.
돈 잃어버리고 이번처럼 담담하기는 처음이었다.
돈 잃어버리고 기도하기도 처음이다.
마치 내 돈이 아닌 그런 기분.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형편이 감사했다.
내 젊은 시절은 항상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고 한 달 한 달
쪼들리며 힘들게 살아가던 시간이었기에.
지금의 여유가 감사하고 감사하다.
인색하지 말자고... 돈 있어도 서랍 안에 있고 쓰지도 못하는데...
나에게 돈 생기는 대로 잘 쓰자고,
잘 사용하자고, 잘 흘려보내자고 기도한다.
'그룹명 가족여행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 여행 마지막 날 - 영국 박물관 (16) | 2024.10.28 |
---|---|
런던 셋째 날 - 워릭 성, 셰익스피어 생가, 옥스퍼드 대학 (16) | 2024.10.27 |
런던 둘째 날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 타워 브리지, 마틸다 뮤지컬 (14) | 2024.10.26 |
아들이랑 단 둘이 떠난 좌충우돌 런던 여행기 (18) | 2024.10.26 |
영국 : 런던 마지막 날 (0) | 2016.08.05 |